강의에는 늘 많은 변수가 따른다. 그중 가장 큰 변수는 수강생이고, 그다음은 강의장 환경이다. 날씨와 시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흐린 날이나 지나치게 맑은 날 모두 사람들을 쉽게 피곤하게 만들고, 점심 이후 첫 시간은 강사들이 기피하는 시간대로 꼽힌다. 수강생의 나이대, 직책, 남녀 성비 역시 강의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강의장 구조도 영향을 준다. 길게 늘어진 직사각형 구조나 컴퓨터가 빽빽하게 배치된 장소는 소통을 어렵게 한다. 조명이 너무 어두우면 집중이 떨어지고, 너무 밝으면 화면이 보이지 않아 곤란하다. 이처럼 강의는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하기에 강사는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강의장 배치다. 대부분의 강의는 강사를 바라보는 전통적 형태로 진행되는데, 이런 구조에서는 쌍방향 소통이 쉽지 않다. 능숙한 강사라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는 일방적인 강의 방식에 머물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모둠 수업이다. 5~6명이 한 조를 이루고 4~5개 조가 구성되면 딱 좋다. 다만, 이런 수업 방식은 높은 스킬을 요구한다. 조별 토론을 유도하고 적절한 게임을 활용해 분위기를 띄워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강의가 뒷전이 되고 수강생들끼리만 대화하는 장이 되기 쉽기에 초반 분위기 장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의 5년 차쯤, 나 역시 모둠 수업을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늘 원하던 것은 결국 기회로 다가왔다. 2018년,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실에서 일방적 강의 방식의 한계를 깨고 참여형 모둠 수업을 도입한 것이다. 각 지방청에서 강의할 사람들을 모집했고, 경남청 청문감사관실에서 나에게 손길을 내밀었다. 서울 이태원의 한 호텔에서 1박 2일간 모둠 수업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이미 내 머릿속에는 기본 구상이 있었기에 그 시간은 마치 준비한 요리에 양념을 더하는 과정 같았다.
한 달 뒤, 드디어 첫 3일간의 수업이 잡혔다. 온종일 내가 이끌어야 하는 일정이라 부담도 있었지만, 해보고 싶었던 수업이라는 기대가 더 컸다. 나는 유튜브와 레크리에이션 책을 보며 여러 가지 게임을 익혔고, 입에 붙도록 반복 연습했다. 청문감사관실과 상의해 1등 팀에 줄 선물과 수업 물품도 준비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조 구성이었다. 그래서 수강생 명단을 미리 받아 분석했다. 원칙은 두 가지였다. 첫째, 같은 경찰서에서 온 사람들을 같은 조에 넣지 않았다. 둘째, 나이와 성비를 고르게 배분했다. 여성 경찰관이 여섯 명이라면 각 조에 한 명씩 배치했다. 경험상 남녀가 섞였을 때 더 적극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학습 효과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첫날, 수강생들이 강의장에 들어와 배치를 보고는 놀라며 부담스러워했다. ‘뭔가 많이 시키겠구나’ 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자기소개와 게임으로 어색함을 풀어주자 오후부터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각 조에는 조장을 세우고 팀 이름을 정하게 했으며, 점수제를 도입해 경쟁심을 유도했다. 점심이나 커피를 함께하며 인증샷을 보내면 점수를 주는 방식은 의외로 큰 호응을 얻었고, 둘째 날쯤에는 이미 가족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마지막 날에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사진을 찍고 오래도록 작별 인사를 나눴다.
3일간의 피드백은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힘들 것 같아 걱정했는데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이런 교육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나 역시 세 날 동안 많이 웃었고, 그들과의 이별이 아쉬웠다. 이후에도 2년간 총 8번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대면 교육이 사라지며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하고 싶었던 수업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나 자신이 한층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