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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사또와 사회자 사이에서

by 오박사

밀양 같은 소도시는 축제가 많다. ‘아리랑 대축제’, ‘고추 축제’, ‘딸기 축제’, ‘시민의 날 축제’ 등이 대표적이다. 2019년에는 ‘밀양 문화재 야행’이라는 새로운 축제가 생겼다. 밀양을 알리기 위한 시의 기획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극단의 대표님은 그 축제에 몇 가지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그중 두 가지를 나에게 맡아달라고 했다. 그해는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밀양시는 오랜만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라도 모일 수 있게 되자,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기 위해 야행 축제를 준비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사또께 아뢰오’**였다. 나는 사또 복장을 하고, 두 명의 포졸 역을 맡은 동생들과 함께 시민들을 대상으로 퍼포먼스를 펼치고 곤장 체험을 진행하는 역할이었다. 용인 민속촌의 캐릭터 공연처럼 사람들과 장난치고 어울리면 될 것 같아 부담은 크지 않았다.


두 번째는 학생 토론 배틀 사회였다. 이미 참가 학생들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단지 사회만 보면 된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두 프로그램 모두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일’처럼 보였다.


‘사또께 아뢰오’ 준비는 순조로웠다. 우리는 민속촌 유튜브를 참고해 대사와 행동을 연구했고, 몇 가지 재미있는 상황극을 만들어 연습했다. 하지만 학생 토론에 대해서는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행사 이틀 전이 되어서야 참가자 명단만 받았을 뿐, 주제나 방식은 알 수 없었다. 그때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코로나 시대의 등교 찬반 토론을 해보는 건 어때?”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그래서 바로 그 주제로 정하고, 찬성과 반대 팀을 나눈 뒤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의견을 준비해 오도록 했다. 딸도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일단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행사 당일, 예상치 못한 난관이 닥쳤다. ‘사또께 아뢰오’ 부스는 단순 체험 공간이 아니라, 아예 하나의 공연 무대처럼 꾸며져 있었던 것이다. 무려 한 시간을 사람들 앞에서 이끌어야 했다. 동생들과 급히 대책을 세워봤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시민들과 간단한 게임을 하며 분위기를 풀고, “사또에게 옆사람의 죄를 고하시오!”라고 외쳤다. 시민들이 서로를 고발하면, 직접 곤장을 치게 했다. 우리는 과장된 리액션으로 웃음을 유도했고, 때로는 우리가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예상보다 반응이 뜨거웠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자 모두 녹초가 되었지만, 그만큼의 성취감이 밀려왔다.


잠시의 여운도 없이, 두 시간 뒤에는 학생 토론 배틀 사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한 시간 전, 참가 학생들과 모여 진행 방식을 논의했다. 찬성 측과 반대 측 대표가 각각 발표하고, 그에 대한 반론을 이어가는 형식으로 정했다.


행사장은 원탁이 열 개 정도 놓인 공간이었고, 토론 참가 학생들 외에도 20여 명의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처음엔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토론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발표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고, 반론이 이어졌다. 어느새 토론장은 활활 불붙은 듯 뜨거워졌다. 나는 흐름이 과열되지 않도록 중간중간 정리하며 사회를 이어갔다. 예상 밖의 참여 열기에 나도 흥이 났다. 토론이 끝난 뒤 학생들은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며 웃었고, 대표님도 “그 정도로 해낼 줄 몰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순간,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오히려 “조금 더 이어가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밀양 문화재 야행’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코로나로 지쳐 있던 시기에 시민들에게 웃음과 활력을 전할 수 있었고, 나 또한 그 무대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무대 위의 사또, 토론장의 사회자—그 모든 순간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 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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