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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코로나가 남긴 선물, 적응과 성장

by 오박사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꿔버렸다. ‘언택트’라는 단어가 급격히 우리 사회로 스며들었고, 재택근무와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되었다.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되면서 많은 업종이 타격을 입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강사’였다. 그러나 강사들은 곧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교육 방식에 적응했고, ‘줌(Zoom)’ 등을 활용한 언택트 교육 시장이 빠르게 성장해 갔다.


경찰청 역시 모든 집합 교육을 중단하고, 집에서도 재택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경남경찰은 교육센터 내에 온라인 강의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강사들이 그곳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교육생들은 집에서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온라인 교육 초기에는 실수가 잦았다. 자료가 보이지 않거나, 목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화면이 꺼지는 등의 문제가 빈번했다.


나 역시 경찰청 동료강사로서 온라인 교육을 진행해야 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비대면 교육이었기에 걱정이 앞섰고,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막막했다. 내 강의는 질문과 소통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매끄럽게 흘러가기 때문에 고민은 더욱 컸다. “어떻게 하면 대면 강의와 비슷한 흐름으로 이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강생들의 무관심이 걱정이었다. 온라인 교육은 종종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 또한 예전에 온라인 교육을 들을 때 집중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우려는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있었다. 채팅창과 손가락 제스처 같은 간단한 의사표현을 통해 교육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강의 당일, 나는 20분 일찍 온라인 부스에 도착했다. 화면을 보니 이미 10명가량의 교육생이 접속해 있었고, 나머지는 화면을 끄고 있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꺼둔 덕분에 긴장한 내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깊게 숨을 고르고, 교육 담당자가 알려준 절차에 따라 자료를 준비했다. 교육 5분 전, 화면과 마이크를 켰다.

교육생들의 마이크는 모두 꺼진 상태였다. 모든 마이크가 켜지면 소음이 심해 강의 진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시작 1분 전, “이제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자리에 계신 분들은 화면을 켜주세요.”라고 안내했다. 잠시 후 하나둘 화면이 켜졌고, 약 30명의 교육생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제 목소리가 잘 들리면 동그라미 표시를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교육생들이 각자 손가락으로, 혹은 종이에 그린 동그라미로 화답했다. 그 모습을 보니 긴장이 풀리고 자신감이 생겼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친 후, 나는 채팅을 통해 질문에 답을 하면 강의가 더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안내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조금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에 몇몇은 웃으며 반응했다. 채팅은 짧게 두세 글자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중심으로 했다. 채팅이 어려운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1번, 2번을 표시하게 했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긴 글을 올리는 교육생도 생겼고, 그들의 메시지를 읽어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참여도는 더욱 높아졌다. 마치 방송을 진행하는 VJ가 된 기분이었다.


방송하듯 진행하는 온라인 강의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물론 대면 강의보다 훨씬 에너지가 소모됐지만, 걱정했던 난관은 없었다. 마지막 인사 때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화면 속 교육생들이 손뼉을 치거나 채팅창에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강의였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따봉 표시도 이어졌다.


물론 모든 온라인 강의가 매번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나 스스로도 능청스러워졌고, 반응이 없어도 나름의 방식으로 분위기를 살리거나 혼자 연기를 하듯 강의를 이어갔다. 이제는 온라인 강의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대면 강의를 더 좋아한다. 사람의 표정을 보고, 온기를 느끼며 호흡을 맞추는 그 순간이 훨씬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AI로 흘러가더라도, 결국 사람의 온기를 이길 수는 없다고 믿는다. 코로나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가슴 뛰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시대의 변화는 두려웠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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