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 못하는 일.
*가정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습니다.
유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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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찌 보면 평범했고,
어찌 보면 평범하지 않았다.
아빠의 알코올 중독, 그걸 견뎌낸 엄마.
두 딸들을 지켜내기 위해 엄마는 이혼을 결심했고,
치열하게 살았고, 우리를 지켜냈다.
초등학교 5-6학년, 내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두 가지가 있었다. 20평 대의 작은 집, 밤이 되면 모든 불이 꺼지고 부엌의 노란 불빛만이 밝히던 거실의 모습.
나는 동생을 조용히 시키고, 어그러진 문을 열기 위해
아주 천천히, 천천히 문을 열었다.
불안해하는 동생을 안심시키고 이불에 숨긴 후,
숨을 죽이고 문 틈 사이로 부모님의 싸움을 지켜봤다.
술에 잔뜩 취한 아빠는, 누운 채로 토를 했고,
소파 아래엔 토사물이 흘렀고,
지독한 알코올 냄새와 담배 냄새가 집 안을 메웠다.
그러다 아빠가 깨면, 엄마와 싸웠다.
어린 동생에게 술 심부름을 시킬 때면,
내가 대신 간 적도 많았다.
아빠는 이미 동네에서 유명했고,
슈퍼 아저씨는 날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며
검은 봉투에 소주를 두 병 담아주었다.
그건 몇 년 간의 일상이었고, 나는 늘 숨죽이며,
엄마가 죽을까 봐 잠도 자지 못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일이 터진 거다.
유난히도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았던 나는,
어렸던 나는 그 싸움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우두커니 방에서 나와
거실에 서있었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욕설, 엄마의 절규.
나의 존재를 눈치챈 아빠는 핏발이 잔뜩 선 눈으로
내게 칼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아주 차분한 말투로.
그 말들 속 엄마는 아빠 아래에 깔려 목을 졸리고 있었고,
목이 졸린 채로 나를 바라보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순순히 부엌으로 가
조용히 가장 커다란 식칼을 작은 손에 들었다.
그리곤 아빠의 등 뒤에, 칼을 대며 악을 질렀다.
죽여버릴 거라고, 차라리 죽으라고,
칼 끝이 아빠의 등에 닿아 눌리던 그 촉감이,
울며 목이 졸린 채로 그러지 말라던 엄마의 눈물이,
나는 들리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고,
가장 사랑했던 딸인 내가 칼을 누르자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으며,
엄마는 곧바로 허덕이며 일어나
내 손의 칼을 빼앗아 던지고, 나를 끌어안았다.
가방을 메면 팔다리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학교 가는 뒷모습만 봐도 눈물이 났다는 그 딸이,
칼을 들어 아비를 겨누는 걸 봤을 엄마의 그 마음이.
경찰과 이모가 오고서야 나는 눈물을 터트렸다.
이모는 날 끌어안았고, 애써 웃으며 내게 장난을 쳐주었다.
무너진 어린 나를 어떻게든 이어 붙이려 애썼다.
해가 어슴푸레 뜰 새벽녘, 이모가 우느라 지친 나를 위해
깎아 먹이려 애썼던 사과조각을 나는 기억한다.
두 번째 기억은, 욕실이었다.
어김없이 만취한 아빠는 목욕을 해야겠다며
욕실에 들어갔고, 나는 희망을 걸었다.
목욕은 평소의 아빠가 좋아하던 것이라,
그리 씻기라도 하면 정신이 들 거라고....
그리고 아빠는 나를 욕실로 불렀다.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채로,
웃으며 내게 실과 바늘을 가져오라고 했다.
머리를 꿰매어야겠다며.
피가 물든 욕조의 물, 피가 흥건한 얼굴로.
내가 무너져가는 것을 본 엄마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이 일들은 몇 년 간 계속되었다.
술에 취해 길바닥에서 잠들고 토해,
경비실 아저씨는 매번 우리에게 인터폰으로,
또는 초인종을 눌러 아빠를 데려왔다.
수 없이 많이, 만취한 아빠는 우리에게 쌍욕을 하며,
열리지 않는 현관문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공포에 모두가 숨을 죽였고, 그날은 밖의 소리에
한껏 귀를 기울이느라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었다.
나는 아직도 복도의 계단이 무섭다.
그곳에 앉아 나를 노려보던 눈도,
그 옆을 뒹굴던 초록의 소주병도.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아빠는 사라졌다.
그리고 동생이 시작이었다.
한참을 엇나갔고, 엄마는 자식을 놓지 못했다.
기어이 엄마가 암에 걸려 수술을 받을 때에도,
수술실에서 나온 엄마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동생은 학교에서 사고를 쳐
나는 병원 비상구에서 수술실에 들어간 엄마 대신
학교에 죄송하다고 빌어야만 했다.
나는 그때에, 그 아이를 놓았다.
내 엄마를 죽이려 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우리를 위해 그 독한 항암을 받으면서도,
일을 계속해야만 했다.
다 빠져버린 머리도,
무더운 여름 너무나 힘들었을 가발도.
항암으로 무엇하나 하기 힘들었을 몸으로.
학교에 다녀와 집에서 늘 본 것은
온 집을 어질러두고, 스피커 폰으로 쌍욕을 섞은 대화를
자칭 친구들이라 부르는 아이들과 하며
화장만 짙게 하는 동생이었다.
싱크대엔 배달 음식이 그대로 엎어져
초파리가 들끓었고, 거실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엄마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 놓고,
내 엄마를 죽이려 했다.
울면서 집안일을 했다.
어느 날은 싱크대에 물을 틀어두고 이 악물고 울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엄마가 해야 한다.
엄마를 잃는 건, 내겐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으니까,
나는 나를 갈았다.
갈리다 못해, 엄마에게도 칼을 꽂았다.
그래도 내 자식인데,라며 엉망이 된 모습으로도
동생을 감싸는 모습이,
날 생각해주지 않는 거 같아서.
엄마가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살아.
죽고 싶었다. 탈출구가 그뿐인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겁은 많아서, 약 구할 곳이 없어서,
게보린 같은 진통제를 모아 새벽에 30알씩 먹었다.
위장이 뒤틀리며 구역질을 미친 듯했고,
그 조차 엄마가 깰까 조용히 물을 틀어두고 토했다.
왜, 안 죽는 거지.
이 정도론 안 되는 걸까.
계속, 몇 번이고, 삼키고 삼켰다.
내일은 눈을 뜨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결국 엄마는 나에게 독립을 권했다.
너까지 잘못될 것만 같았다고.
보증금 500만 원, 엄마가 해줄 수 있었던
그때의 최대한의 노력.
나를 살리기 위했음이리라.
그렇게 나의 첫째 고양이와 함께,
나는 월세 30의 천장이 세모난 자취방으로 나섰다.
더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망가져가고 있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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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자취방에 들어선 날,
텅 비어있는 그 공간에서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이가 갈릴 정도로 악물고 울었다.
혼자가 됐음을 자각한 동시에,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과 정신을
홀로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그 곁을 지켜준 건,
아주 따뜻한 치즈색의 내 첫째 고양이었다.
더없이 다정하고 조용했던,
사랑을 할 줄 아는 고양이.
돈이 없어 난방을 틀지 못해
한기가 도는 어두운 방에서 날 기다렸던,
가장 따뜻한 나의 고양이.
나는 그때 알았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는 너구나....
사랑하는 나의 첫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