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구름을 기다리며

백예린 – [Flash and Core]

by 율무



서로가 서로에게 페르소나였던 10년이었다. 구름의 감성을 백예린의 목소리가 품었고, 그녀는 그것을 솔로 앨범으로든, 밴드 ‘더 발룬티어스’의 앨범으로든 완성해왔다. 두 사람은 하나의 언어로 대화하듯 음악을 만들어왔고, 그렇게 쌓인 시간은 결국 구름의 세계를 넘어, 백예린의 감성이라는 독자적인 우주를 만들어냈다. 길고도 질긴 인연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영원하길 바랐다.



하지만 음악은 늘 변화의 언저리에 있다. 오랫동안 백예린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완성될 것 같았던 구름의 이야기는 이제 그의 목소리로 이어가고 있다. ‘인 영’에서는 킥과 보컬의 리듬을 미묘하게 비틀어 불안함을 절절한 감정으로 치환하고, ‘하늘, 손, 풍선’에서는 그토록 미워하던 이를 향한 울부짖음을 거칠게 밀어붙인다. 감정의 파동이 거칠게 요동치지만, 여전히 구름다운 섬세함으로 제어된다. 또한 Bye Bye Badman으로 활동을 재개하며 팝 펑크의 질주감 위에 슈게이징 특유의 몽환적 질감을 얹은 ‘Pigs’까지. 그렇게 구름은 여전히 구름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구름이다. 백예린 없는 구름은,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순조롭게 항해 중이다.





그렇게 구름이 홀로서기를 완성해 가는 지금,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구름 없는 백예린의 음악은 어떤 모습일까."



돌연 힙합 프로듀서 PEEJAY와 손을 잡은 그녀는 잘할 수 있는 음악보다 잘 하고 싶은 음악을 택한 듯했다. 오프닝 트랙부터 낯선 전자음과 건반의 이질적인 질감이 부딪히며, 이번 앨범이 암시하는 백예린의 변화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No man’s land’에서 들려오는 도회적인 힙합 비트, ‘save me’와 ‘Teary lover’의 DnB 리듬은 그간 그녀에게서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시도이다. 익숙하지 않은 질감이지만, 그 도전의 결은 백예린의 음악 세계를 한층 넓고 깊은 방향으로 밀어올린다.



문제는 그 도전의 의미가 시도 자체에 머무는 것 같다는 점이다. 장르적 색채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구간조차 조심스럽게 등장해 곧바로 물러난다. 전자음의 질감이 밀고 들어올 듯하다가도, 다시금 백예린의 익숙한 감정선에 흡수된다. 그 결과, 힙합이나 DnB 같은 장르적 실험은 완전한 몰입으로 이어지기보다 맛보기에 가까운 인상으로 남는다.


앨범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뚜렷해진다. 심심한 전자음이 깔린 트랙들이 이어지긴 하지만, 어느새 그녀 특유의 R&B와 발라드 감성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우리는 다시 익숙한 백예린의 세계로 돌아온다. 오히려 앨범 초반에 느껴졌던 새로움과 신선함에 대한 기대감에 점점 꺾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완벽한 변신보다는 변화를 향한 시선에 더 가까운 앨범. 백예린은 낯선 장르의 문턱에서 자신감보다 망설임이 더 커 보인다.






최근 몇 년간 대중음악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이러한 시도는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도 하다. 뉴진스와 PinkPantheress가 불러일으킨 저지 클럽(Jersey Club)과 UK 개러지(UK Garage) 사운드는 최근 몇 년간 대중음악의 흐름을 뒤흔든 전자음악의 대표적인 파생물이다. 여기에 Charli XCX의 Brat 열풍은 전자음악의 정점을 찍으며 그 흐름에 결정적인 불을 붙였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은 틱톡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맞물리며 더욱 가속화됐다. 짧은 영상 속에서 즉각적으로 반응을 유도하는 사운드, 반복적인 리듬의 중독성은 음악의 소비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 결과, 한때 고인물 파티로 불리며 정체기를 겪던 전자음악은 다시금 주류 음악으로 복귀했다. 블랙핑크의 ‘뛰어’ 같은 테크노 트랙, JADE의 ‘Angel of My Dreams’ 같은 하우스 넘버까지. 예상치 못한 아티스트들조차 전자음악을 시도하며 새로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흐름을 감안하며 백예린 역시 이러한 파동에 탑승해 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음악적 안온함을 깨뜨리려는 의식적인 몸부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온의 사례는 흥미롭다. 그는 ‘comedy’를 통해 느긋하고 여유로운 감성을 각인시켰지만, 최근 발표한 앨범 [eigensinn]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전자음을 범벅하며 귀환했다. 나른했던 저음 대신 오토튠이 짙게 깔리고, 이마저도 디지코어와 하이퍼팝의 속도감에 묻혀 거의 사라진다. 대신, 마치 게임 속을 질주하는 듯한 전자음의 폭주가 시청각적인 쾌감을 만들어낸다.


처음엔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매력적이다. 아무리 들어도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예전의 시온이 아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불편하지 않다. 아예 생각지도 못한 장르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과감함과 대담함이 환영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장르적 해석을 완벽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대중은 낯섦에 익숙해졌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티스트를 반갑게 맞이한다. 음악은 더 이상 완성도를 향한 싸움이 아니라, 자기 갱신의 과정으로 소비된다. 오히려 불안할 만큼의 모험이야말로 지금의 음악 씬에서 가장 솔직한 태도이다.




그러한 점에서 백예린의 이번 앨범은 아쉬움을 남긴다. 새로운 질감을 탐색하려는 의지는 분명하지만, 그 시선이 끝내 완전히 뻗어나가지 못한 듯하다. 익숙한 영역에서 살짝 벗어나려는 몸짓은 있었지만, 결국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어영부영한 시도가 아니라, 시원하게 벗어던질 수 있어야 했다. 그녀가 가진 감성과 보컬, 그리고 음악적 감수성은 변화를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그릇을 지녔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은 더 과감했어야 했고, 더 자유로워야 했다. 그 전환의 문턱에서 그녀는 아직 반걸음쯤 머뭇거리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그래서 구름 없는 백예린의 음악은 어떤 모습일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 시절의 감정선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번 앨범처럼 모호한 경계에 머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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