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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 Jul 18. 2024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그래서 오늘 하루를 산다.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그러다가 정말 그러다가 언제 웃었는지 기억이 안나는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깊은 동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유월을 보냈다. 상황이 바뀐 건 아니지만,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힘으로 나를 끄집어낸다. 벌써 뜨거운 햇빛 아래이거나,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칠월이 되었다.


매일 아침, 엄마를 깨우면서 아침은 시작된다.

(엄마) “나 오늘 어디 가냐?”

(나) “네, 센터에 가요(주간 보호센터에 다니기 시작한 지가 지난여름이니 벌써 일 년이 돼 간다.)

(엄마) ”가기 싫은데 안 가면 안 되냐? “

(나) ”가야 해요,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서 가야 해요(생각나는 데로...)

(엄마) “나 갈지도 모르는데... 누가 데리러 오냐?”

(나) “선생님이 오세요”   

  

어느 날 아침, 다른 날과 별반 다르지 않게 엄마를 깨웠다.

치매 진단받은 지 오 년째, 요즘은 점점 눈이 흐릿해 보인다. 언뜻 보면 아직은 칠십 언저리(표지참조, 2024년 1월, 치앙마이)로 보일 수 있으나, 표정은 멍하다.


유월의 어느 날 아침, 맑은 얼굴로 주방으로 나오신다. 순전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은 천진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으로.


(엄마) “네가 내 언니 같다.”

(나) “머...머....머???”

(엄마) “우리 둘만 여기 살고 있냐?”

(엄마) “나는 자식들이 있냐?”  

   

현기증이 났다.


(나) “내가 엄마 딸, 너무 깊이 자서 꿈을 꿨나 봐”

(엄마) “네가 내 딸이라고? 꼭 언니 같다”

(나) “머리가 아파서 조금 누웠다가 나올게....”

(엄마)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도, 나를 따라오지도 않는다.)   

  

벌써 이러면 반칙이잖아, 아니 적어도 나는 어떤 상황이 와도 끝까지 기억할 줄 알았는데...


“아직 아무런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여름 장맛비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둑처럼 하염없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얼굴이 창백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자려고 해도, 몸을 뒤척여 보기도,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억지로 마셔보지만 잠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삼일 잠들지 못하니 점점 힘에 부쳤다. 처음에는 이러다 자겠지 했다가 이 생각 저 생각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잠들지 못한 내가 미웠다가, 엄마가 미워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를 원망한 내가 극도로 싫어졌다. 그러다가 지난 간 세월들이 후회가 되었다.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치매에 걸리지 않았을까... 나는 왜 이리 못났을까...

 

한 집에 사는 두 여자

엄마와 나는 많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나, 무엇하나 같이 하는 게 없다.


이젠 아파도, 집안에서 넘어져도 말하지 않는다. 기억의 어딘가에 남아있는 모성애로 방문을 열고 왔다 갔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그거에 시늉하느니 차라리 일어나서 괜찮아졌다고 밖으로 나와야 끝이 난다.


아니면 다 잊어버리고 무언가 찾아달라고 한다.  엄마를 대신해 목걸이, 팔찌, 통장 등등을 찾으려 상상하고 노력하다 보면, 가슴 한편이 답답하고 막막하다.


동생집이라도 가야 그나마 마음껏 아플 수 있다.


유럽에 십여 일을 다녀왔지만, 출발도 도착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는 알지 못한다. 내가 그곳에서 오히려 잘 지내었다고 하면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정신이 돌아온 엄마는 이번에는 갑자기 미친 듯이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걸음걸이도 이상해져 결국엔 잘 걷지도 못하게 돼버렸다.


의사가 엄마에게 묻는다 어디가 아프시냐고... (내가 대답해야 하나 싶지만, 벌써 몇 번이나 설명하지 않았나...) 반드시 환자에게 들어야만 하는지 다시 연거푸 묻는다.


엄마가 마지못해 대답한다 "어디가 아프다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오늘 하루를 산다

오랜만에 노트북을 여니 방전이 되어있다. 책도 읽을 수가 없었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은 쓸 생각 조차 할 수 없었다. 마음이 산란했고 그 어떤 거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브런치에 나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내 글의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주신 @Kyrene 작가님의 글을 읽고, 왜 만난 적 없는 내가 궁금할까 했다가 나도 그분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낯선 타인에게 이렇게 손을 내어줄 수 있을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으나, 표현할 재주가 미천하다.


운명 공동체 같은 동생과 제부의 한결같은 이해와 도움으로 오늘 하루를 산다.


거부하고 또 거부하고 그러다 거절해도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와 지인들, 그리고 멀리에 있는 메리의 걱정과 위로에 오늘 하루를 산다.  어쩌면 우리는 안부를 물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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