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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따니 Dec 21. 2023

쓰다,나누다,새기다

나의 흔적들은 앞으로 계속 새겨질 것이다.

나는 암 생존자이다. 나는 혹시나 남겨진 사람들에게 내 흔적을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건 1차 항암을 끝나고 집에서 휴식기를 가질 때였다. 나에게 주어진 3주가량의 기간이 너무 무료했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병을 앓고있는 환우들의 글을 찾아보게 되었다. 


나처럼 20대의 젊은 나이에 급성 백혈병이 발병한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활동하는 블로거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환우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며 상황을 전하고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나이, 성별, 지역 불문 단지 같은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동병상련의 공통점으로 우리는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형성했다. 다른 환우의 글이 올라오면 재빠르게 하트를 누르고 긴 댓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아 항암부작용이 오셨구나’,‘아 이식 공여자를 찾으셨구나’등 올려주는 소식 하나하나에 같이 울고, 웃었다. 알찬 정보들도 많이 공유해서, 나도 투병생활에 도움되는 정보들을 감사히 얻을 수 있었다.     



나도 아프기 전에도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던 터라 블로그에 소소한 근황들을 일기 쓰듯이 전하며 글을 쓰다 보니 제법 많은 이웃들이 생겼다. 그 중에서는 정말 우연히도 나와 같은 지역에 사는 한 살 언니도 있었는데 처음에 동네 이름을 듣고는 너무 신기해서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괜히 더 가깝게 느껴지고 당장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언니가 병원에 있어서 그러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블로그에서 계속 댓글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집앞에 서는 오일장에서 같이 꽈배기 사먹자는 약속도 했다. 그런데 언니의 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점점 늦어지더니 언젠가 항암이 예상보다 힘들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나는 그래도 언니가 잘 이겨내리라 생각했지만 결국 언니의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사실 동네 언니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분들도 갑자기 글을 올리지 않으신다거나 가족분이 대신 비보를 전하는 일이 꽤 많이 있었다. 나는 그런 글을 볼때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였다. 같이 꼭 낫자고, 우리는 젊으니까 꼭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파이팅을 외쳤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도 어쩌면.. 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혈모세포이식 후에 폐에 이식편대숙주병이 온 뒤로 부터는 블로그 운영이 힘에 부쳐서 블로그를 폐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분명 글로써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었고 후회없이 서로를 응원했다. 내가 써내려간 댓글들이 환우들의 마음에 닿아 조금의 온기라도 전해졌다면 나는 그걸로 그들과 나누었던 글들은 충분한 의미를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블로그 폐쇄 후부터는 비공개로 나만의 일기장처럼 블로그에 허심탄회한 하루의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의 감정, 건강상태, 소소한 일화들을 모두 적어두었다. 이렇게 글을 써놓고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들에게 내 아이디를 알려주고 내 일기장을 넘겨줄 생각이였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럴일은 생기지 않아 아직도 나만의 대나무숲으로 내 블로그는 소중하게 잘 쓰여지고 있다. 아직도 가족들은 내 블로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나는 매일 나만의 자취를 남겼고, 덕분에 나에게는 8년간의 투병기간동안 겪은 셀 수도 없는 많은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 이야기들은 분명 내가 앞으로 글을 써내려갈 때 갚을 메길 수 없을 만큼 귀한 양분으로 자리하여 이야기 꽃을 활짝 피워줄 것이다. 그 수많은 글들을 보다보면 나 이렇게 잘 버텨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괜히 뭉클하기도 한다. 힘이 빠지고 지칠때면 내가 치열하게 병마와 싸웠던 순간들을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러면 ‘그래 나 이렇게도 고생하고 열심히 이겨냈었는데 뭔들 못하겠어!’ 하는 용기가 생긴다. 내 글은 나에게 더없는 자양강장제인 것이다.



누가 나에게 보물 1호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내 블로그를 꼽을 것이다. 내 글감이 한가득 담긴 보물상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상자를 열어가며 앞으로도 내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갈 것이고, 나의 흔적들은 앞으로 계속 새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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