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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따니 Jan 11. 2024

나의 소원은

 그때의 나는 그랬다. 좋은 직장을 얻어 높은 연봉을 받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는 것이 성공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점관리와 대외활동을 했다. 주변의 좋은 회사에 들어간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꼭 되리라 다짐했다.

생일 촛불을 끌 때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이할 때도, 추석날 둥근 보름달을 보고 두 손을 모을 때도 나는 항상 ‘성공하게 해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었다. 하지만 나와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과 자신의 건강을 염원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왜 몰랐을까. 만약 그때 내가 성공이 아닌 건강을 간절히 빌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된다는 말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에겐 너무 먼 이야기였다. 20대 청춘에게 두려운 건 없었다.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밤을 새우고도 다음날 수업에 기를 쓰고 나갔고, 아무리 피곤해도 주말에 부모님 얼굴을 뵈러 본가에는 꼭 내려갔다. 밤새 술을 마시고도 점심에 해장으로 또 반주를 했다. 나는 그렇게 젊음을 방패 삼아 내 몸을 혹사시켰다. 그래도 나는 항상, 언제나, 무조건. 건강하리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오만한 사고가 없다. 그렇게  어느샌가부터 나 자신도 알지 못하게 내 몸은 점점 심각하게 망가져 갔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무균실에 누워있을 때, 우습게도 나는 지식인에 [백혈병 완치자도 공무원이 될 수 있나요?]라고 질문글을 올렸다. 그때는 내가 다 낫더라도 사기업에 가기는 힘들 것 같고 비교적 허들이 낮은 공무원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냥 아프면 다 내려놓고 치료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그냥 나 자신을 오롯이 돌보기만 해도 되는데.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리석게도 퇴원하면 공무원 강의를 결제해서 듣고, 1년 안에 꼭 붙어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백혈병이 얼마나 힘든 병인지 몰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비록 몸은 이렇게 망가졌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나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공무원이라는 그럴듯한 신분이 꼭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기어코 퇴원 후 부모님을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공무원 프리패스 인강을 결제했다. 그리고 하루에 몇 시간씩 강의를 들었다. 평소 이런 주입식 수업과 객관식 시험에는 자신이 있었던 터라 이대로 계속 공부에 전념하면 조만간 합격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골수이식 부작용으로 간이 망가졌다. 입원을 했다. 그리고 또 퇴원을 했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다 이번엔 장이 망가졌다. 또 입원을 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입원과 퇴원을 셀 수 없이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알게 된 것 같다. ’아 공무원은 이 몸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겠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나는 곧바로 프리패스 인강을 환불신청 했다.     


속상해하는 나에게 가족들은 ‘굳이 무언가가 되어있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이렇게 가족들 옆에 살을 맞대고 숨 쉬고 있다는 자체로도 우리는 행복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절대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미안해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렇게 눈물 나게 따스한 말들로 가족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성공에 대한 강박을 서서히 녹여주었다.     


세상의 모든 가치 중에 가장 소중하고 가장 지켜야 하는 가치는 단연코 건강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안다. 주변에게 보이기 위한 성공은 결코 나를 본질적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온몸으로 느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성공은 10대 대기업 입사, 전문직 합격과 같은 그럴듯한 타이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당당하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나. 그 자체가 성공이 아닐까.

 나는 이제 나를 천천히 다듬어 보고자 한다. 이미 망가졌다면 다시 꼼꼼히 다듬고 하나씩 고치면 된다. 나를 소중하게 다듬어서 평범한 삶의 궤도에 올릴 수 있도록 매일 천천히 노력해야지.

괜히 성공에 목맸던 과거의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늦게나마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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