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기쁨
-엄마 나 그 집 주꾸미 먹고 싶어. 지금 집에 가고 있는데 점심으로 먹고 들어가는 거 어때?-
-좋아! 다 와 가면 전화해 줘. 엄마 나갈게-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그 주꾸미 집을 정말 좋아했다.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갈 때면 꼭 그 집의 주꾸미가 생각났다. 감칠맛이 도는 매콤한 주꾸미 볶음과 고소한 고르곤졸라 피자, 새콤한 묵사발을 다 함께 주는 파격적인 구성을 자랑하는 그곳은 우리같이 매운 걸 즐기는 가족 단위들의 손님들로 항상 북적북적했다.
물론 그 주꾸미 집만의 특유의 매콤함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엄마랑 마주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몽글몽글 참 좋았다. 느끼한 걸 싫어하는 엄마는 고르곤졸라 피자를 몽땅 나에게 양보하였고 그럼 나는 헤벌쭉 웃으며 주꾸미 한 점을 피자에 턱 올려서 한입에 야무지게 싸 먹곤 했다. 볼이 터져라 먹고 있는 나를 보면 엄마는 꼭 귀여운 꽃돼지 같다며 나를 놀렸다. 그럼 우리는 마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참 꿈같은 장면이다.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넘치게 행복했기에 그 순간이 벅차도록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지금 나는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 골수이식 부작용으로 구강이 너무 약해져 버렸다. 일반 김치도 씻어서 먹어야만 하고 전혀 맵지 않다는 음식들도 나는 씁하-를 반복하며 포기해야만 했다. 치약도 순하다고 소문난 어린이 치약, 칫솔을 썼다. 그런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은 모든 식단에서 빨간색을 빼야만 했다.
워낙 부모님은 평소에 매운 음식을 좋아하셨어서, 일부러 안 매운 하얀 음식만 찾아서 드셔야 하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내 식단은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드시고 싶은 거 드시라고. 나는 안 매운 음식도 충분히 맛있다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부모님은 강경하셨다. 자신들만 빨간 음식을 먹으면 나는 얼마나 옆에서 먹고 싶겠냐며, 내가 분명 속상해질 거라고 한사코 거절하셨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내 눈치를 보며 맵지 않은 한정된 메뉴를 겨우겨우 돌려가며 드셔야 하는 상황이 훨씬 더 속상했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시간이 지나니 점차 입이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씻어 먹던 김치를 잘게 쪼개면 씻지 않고도 먹을 수 있었고, 덜 자극적인 음식은 나름 수월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 입 상태가 좋아지자 가장 먼저 그 시절 먹었던 주꾸미가 생각났다. 그래서 하루는 엄마한테 큰맘 먹고 우리 그 주꾸미 집에 다시 가자고 권했다. 처음에 엄마는 그게 얼마나 매운데 네가 감당이 되겠냐고 안된다고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나는 그 주꾸미 집에도 순한 맛이 있고 지금 나아진 내 입 상태로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엄마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리고 결국 엄마가 나에게 백기를 던졌다. 성공했다!
나는 신나서 그 주꾸미 집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다. 우리는 정말 몇 년 만에 그 주꾸미 집에 다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감회가 참 새로웠다. 두근두근 긴장 반 설렘 반이었다. 먼저 메인 주꾸미가 나왔고 피자, 묵사발이 따라서 나왔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제일 작은 주꾸미를 집어 입에 넣었다. 역시나 많이 매웠다. 제일 순한 맛으로 시켰는데도 아직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전혀 매운 티를 내지는 않았다. 엄마는 반면 너무 맛있었는지 대접에 김가루를 넣고 주꾸미를 올려 무생채와 함께 맛깔나게 비벼 드셨다. 그동안 허여멀건한 음식만 드시다가 이렇게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입맛이 마구 도셨는지 정신없이 흡입을 하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니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렇게 매운 음식을 좋아하시면서도 나를 위해서 참아내고 모든 부분을 나에게 맞춰줬던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렸다. 엄마는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곤 맛있게 먹었냐며 나에게 물었고 “나는 진짜 맛있게 먹었어! 최근 먹은 음식 중 최고였어! 조만간 또 오자”라며 대답했다.
나는 이렇게 앞으로도 매운 음식들에 한 가지씩 차근차근 도전해 볼 생각이다. 엄마 손 잡고 주꾸미 집에 들어가서 도란도란 시렁을 나누며 주꾸미 한 접시를 비워내던 그 시절까지는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기쁨을 언젠가는 함께 꼭 느끼고 싶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내 입도 지금처럼만 서서히 좋아진다면, 그저 맛있게. 그저 행복하게 그 식사 자체를 즐기던 해사했던 그 시절로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