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실 나가는 길가에는, 이 지역의 역사와 함께하는 야생 감나무가 터줏대감처럼 여기저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무 품종에 따라 감의 생김새가 다양함을 알 수 있다. 검색을 해보니 단감, 떫은 감, 대봉 등으로 추정된다. 잘 익은 감들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이제 땅으로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기인우천(杞人憂天)이란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질까 봐 잠자고 먹는 일을 잊고서 근심 걱정을 했다는 사자성어다. 이는 너무 나간 경우지만, 대신에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지는 상황만큼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서는 하다 못해 전선줄이 떨어져 지나가는 행인이 감전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어제는 항상 무심코 지나가는 길인데 바로 내 앞에서 큼지막한 감이 떨어져 퍽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피할 시간이 없었기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멍들고 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몇 해 전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송이로 인해 오른 어깨 쪽에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나도 모르게 ‘억’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그만 물체라 해도 가속도가 붙으면서 상상 이상의 충격을 나에게 전달했다.
고층에서 사소한 물건이라도 밖으로 던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공사장 주변을 지날 때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시설물 낙하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가급적 황당한 일은 경험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살아가기 피곤한데 "그렇게까지 신경 쓰면서 살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상 사고를 당하고 나면 후회할지 모른다.
이어서 감에 대한 나의 추억을 소환해 보고자 한다. 청년시절까지 살았던 고향은 대량으로 감이 재배되는 지역이 아니다. 간혹 길거리에 자생적으로 자라난 경우가 있고 대부분 집집마다 한두 그루씩 간식거리용으로 감 수확을 위해 별도로 심었다. 유감스럽게도 이사 온 우리 집은 사방 어디에도 탐스러운 감나무가 없었다.
다행히 지면이 조금 높은 뒷집에 커다란 감나무 몇 그루가 있었고 나무의 가지 일부가 우리 집 뒤편에까지 뻗쳐 있었다. 대지 경계를 넘어선 가지의 열매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이상하게도 어느 해는 많은 감이 달렸다가 다음 해는 거의 열매를 맺지 않기도 했다. 왜 그럴까? 궁금했지만 그냥 자연의 이치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해거리라는 개념을 알았지만 흉작이 든 해는 나의 간식거리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에 늘 아쉬웠다. ‘노 씨 네’라 부르던 감나무집 아주머니는 인상이 아주 좋은 분이었는데, 내가 간혹 다른 가지를 침범하여 감을 따가도 못 본 척 슬며시 눈감아 주시곤 했다.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감 인심’은 후했던 듯하다.
우리 집은 장손 집안인 관계로 연중에 걸쳐 제사가 많았다. 제수용 곶감은 항상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다행히 형제들은 곶감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듯하여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군것질 거리가 별로 없는 시골에서는 곶감이 얼마나 귀한 존재였던가! 심지어 땡감을 물에 담가두었다가 떫은맛이 제거되면 먹기도 했었다.
정기적으로 고향을 찾는 나를 위해 부친께선 대봉감을 어두운 광에 놓아 치자로 만드시곤 했다. 어른 주먹크기 정도의 감이 홍시로 변신하여 입속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란 어느 광고의 대사처럼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때만 되면 떠나가신 부모님이 보고 싶고 감에 대한 추억도 아련히 솟아난다.
옛 어른들은 감나무 꼭대기 근처에 매달린 열매는 일부러 조금씩 남겨 놓았다고 한다. 추운 겨울날 굶주리는 새들을 위해 “날짐승 먹이”로 따로 배려한 것이다. ‘더불어 삶’의 정수를 보여 준 예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