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 은 야트막한 산 끝자락에 위치한 아파트다. 산 이름은 서달산이다. 달마대사가 서쪽으로부터 온 곳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산은 동작구의 동남쪽지역을 감싸고 있다. 정상이 해발 179M에 불과하지만 현충원을 품은 명당이기도 하다. 산 꼭대기에 있는 동작대 3층에 올랐다. 수년 전엔 시야 아래에 있던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이미 건물 꼭대기를 넘어섰다. 겨울철이 되어 잎을 덜어내야 주변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 멀리 남산타워와 123 빌딩 등 멋진 풍광은 가려졌으나 시원한 산들바람은 더위를 저 멀리 몰고 간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들, 스마트폰 촬영을 하면서 건강하고 정답게 웃고 있는 젊은 연인들, 아프지 않기 위해 무심한 표정으로 산 정상을 벵벵 돌며 비지땀을 흘리는 나이 지긋한 분 들. 나처럼 하릴없이 먼 곳 쳐다보며 상념에 젖어있는 듯한 한가로운 이. 꼭대기 전경이 여유롭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달마사가 나타난다. 수년에 걸쳐 단장 공사를 했는데 다시 찾고 싶은 사찰로 변했다. 사찰 내 등산로 초입에 새롭게 세워진 보살상은 만면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세속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어린 중생들을 구원하시느라 힘이 들 텐데도 항상 인자한 모습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도 부처님의 신통력에만 매달리지 않았으면 한다.
진여문(眞如門)을 나서니 근거리에 있는 체육시설 안에서 배드민턴을 치느라 큰 소리가 들려온다. 코로나 시국 때는 유령시설처럼 썰렁하더니 이제는 왁자지껄 한 장소로 변했다. 정도껏 목청을 높이면 좋겠는데 너무 건강해서인지 지나가는 산책객들이 깜짝 놀랄 정도다. 매미가 높은 데시벨로 울어대니 못살겠다고 난리면서 자신들의 괴성은 음악소리로 들리는 모양이다.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들을 배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약수터에 다다르니 새들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간다. 놀래라! 녀석들 때문에 심장에 이상 생길까 봐 걱정이다. 내가 이들을 위해 하는 유일한 행동은 수도꼭지를 끝까지 틀어 오물이 씻겨나가도록 하고 바닥이 마르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다. 길고양이 밥을 정성껏 배달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 꼭 표시 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보시가 사람을 기쁘게 한다.
우리 동네는 이명박 정부 시절 뉴타운 건설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재개발 관련해서 이해관계가 복잡한 모양이다. 합의가 이루어진 순서대로 공사를 하다 보니 15년 넘도록 공사 중이다. 옆 동네는 재개발을 위해 이제야 철거를 한창 진행 중이다. 가림막 사이로 내다보면 온통 시멘트 덩이와 얽히고설킨 철골들이다. 이곳이 고향이었던 사람들은 이제 옛적 모습을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 먹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비둘기와 까치 몇 마리만이 한적한 공사장 옆 사잇길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인적이 완전히 끊겼으니 먹이활동이나 가능한지 궁금하다. 수십 년을 달동네 주민들과 함께했던 아름드리나무들의 운명은 어찌 될까? 목련과 감나무들도 기존 건물 철거와 함께 사라질까? 직각에 가까운 담 틈새에는 무심한 듯 잡초가 자리 잡았다. 생명력이라 하면 과연 너희들을 따라갈 개체가 또 있을까?
족구 하며 목청 높이던 '아제'들, 약수터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던 어른들, 맨발로 조그만 운동장을 부지런히 거닐던 아줌마들 모두 어딘가로 떠났다. 훗날 멋진 아파트 입주를 꿈에 그리면서. 중복이 지났지만 오늘도 여름은 굵어지고 있다. 장마는 언제 끝나는지 설명도 없다. 하긴 예측이 어려운 기상이변이 빈번하니 기상청 관계자들의 머리도 뜨거울 것 같다. 습도가 높아 짜증 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