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고개를 갸우뚱할지라도 자신만은 특별히 아끼거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나는 비록 사유화 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가을 햇볕을 놓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쓴다. 어려서부터 햇볕과 함께했고 그것의 고마움을 일찍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도 있다. 군복무 시절 너무 새카맣게 타버린 바람에 본디 한국사람이 맞느냐는 농담도 들었다.
과거에 농촌에서 생활하려면 무엇이든 말려야 했다.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도록 고추, 양파, 감자, 깨 등 수확물은 대부분 한낮의 햇볕을 받도록 했다. 보통 농작물은 태양과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단단해지고 상태가 양호해진다. 한편 벌레가 발생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독 속의 쌀도 꺼내서 말렸다. 쌀이 귀해 아껴 먹다 보니 햅쌀이 나올 무렵이면 쌀독 속의 귀한 몸들은 새큼한 냄새가 나는 묵은쌀로 변했다.
쌀단지 안을 들여다보면 초청하지 않았는데도 항상 쌀벌레가 있었다. 운 좋은 녀석은 천수를 다할양으로 나방으로까지 변한 개체도 있다. 할머니 어머니들은 애써 이들을 일일이 손으로 거두어 냈다. 그러나 효율로 따지면 일기가 좋은 날 햇볕에 말리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묵은쌀을 널따란 돗자리 위에 옅게 널어놓으면 열기를 못 이기고 그들 스스로 밖으로 기어 나와 작열하는 태양아래서 장렬하게 자진(自盡)했다.
현재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나는 햇볕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이맘때쯤이면 먼저 옷가지를 점검한다. 장마기간 중 의복에 간혹 곰팡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침구류도 주기적인 세탁만큼 일광욕이 필요하다. 위생측면에서 햇볕이 건조기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래된 책들을 펼쳐보면 간혹 눈에 보일까 말까 한 작은 벌레가 있다. 이들의 퇴치에도 햇볕이 특효약이다.
주택의 경우 특별하게 왜 남향을 선호했을까? 바로 일조량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타워형 아파트다 보니 남서향 방면 호에 입주하게 되었다. 채광시간이 길어 여름에는 조금 더운 반면 겨울은 포근하다.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선택할만한 향이다. 그런데 올여름 같은 더위가 일상화된다면 고지대에 있는 동남향 아파트가 대세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햇볕이 건강과도 직결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비타민 D의 원활한 합성은 뼈 건강과 우울증 및 불면증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대장암 예방과도 상관관계가 높다고 하니 햇볕을 많이 쬐고 볼일이다. 특히 가을은 자외선량이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딸이든 며느리든 차별 말고 야외로 나가라고 등을 밀기 바란다. 약초가 보통 독을 함유하고 있지만 소량으로 쓰면 명약이 되듯이 햇볕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람의 체질은 제각기 다르므로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면 좋을 것이다. 장시간 햇볕에 노출되면 피부노화 촉진, 피부암, 백내장등의 위험이 따른다고 한다. 건강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의 경우 얼굴은 보호하되 팔과 다리를 충분히 노출해 보면 어떨까 한다. 가급적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사이는 피하는 게 바람직하며 30분에서 1시간 이내 활동이 적정하다고 권하고 있다.
세상 살아오면서 체득한 진리다. “특별한 재료가 아니어도 튀기면 맛있다”라는 것처럼 ‘웬만한 건 햇볕을 쪼이고 말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 어떤 약이나 보양식 보다 뛰어난 가을 햇볕을 부디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