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장인 14주기였다. 당신이 떠나기 이틀 전까지 우리 부부는 다투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면회를 갔는데 피골이 상접한 자신을 더 이상 보여주기 싫어 고개를 돌리던 장인어른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신의 마지막 바람은 딸과 사위가 더 이상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잘 살아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사위의 등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손위 처남 내외는 성당을 다니면서도 자신의 부모님 제사를 성심 성의껏 지낸다. 처남댁이 지금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 제사 준비 과정이 힘들 것 같아 조금 더 간단히 차렸으면 하는 게 나의 속마음이지만 두 부부는 일편단심 정성을 다한다. 내가 배울 점이다. 친족 개념이 점점 뒤안길로 사라지고 제사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순기능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회동은 어렵지만 기일 날 만이라도 후손이 함께 모여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들의 뿌리를 돌아보고 조상과 부모의 감사함을 새길 수 있어서이다. 생전 장모님의 음식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셨는데 며느리에게 바르게 전수되어서인지 제를 올리고 난 후 먹는 음식이 나의 입맛에 딱 맞는다. 매년 기여는 없이 배만 채우다가 이번에는 동그랑땡 등 전류를 만드는 작업과정에 동참했다. 그간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제사절차가 끝나면 처는 친정 부모님이 살아계시던 때처럼 당연하다는 듯 이것저것 우리 집으로 챙겨갈 음식 등을 챙긴다. 처남 부부 역시 진심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챙겨주는 것 같아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빈말을 건넨다. 형님네도 자식, 손자가 있어! 적당히 하지! 그래도 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물론 눈치 백 단인데 정도껏 알아서 할 것이다. 가정주부 입장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부모 세대가 모두 떠나셨으니 이제는 우리 차례다. 국내 어느 천문학자가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른의 도리는 죽는 것이다.” 맞는 말인데 뭔가 섬뜩하다. 그래야만 자식과 손자세대들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양가 네 분이 떠나시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아쉬움에 가득 찬 말도 있었고 살만큼 살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어느 경우든 영원한 이별은 많이 힘들다.
어떤 삶을 살았던 마지막엔 나름의 회한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처는 우리들의 마지막에 상황에 대해 간혹 얘기를 나누는데 ‘죽기 전까지 스스로 움직이고, 정신 줄을 놓지 말자’고 서로 다짐한다.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 보잘것없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우리 부부를 가상히 여겨, 하늘이 우리들의 당찬 소망을 반드시 들어주리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