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파브리카>
남자 팬티를 일곱 장 널었다. 남편은 하루 집에 없었고 두 아들이 벗은 것이다. 이전 세탁을 한 지 열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목덜미로 신경질이 올라왔다. 중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지반 잡 안에 있는데 무얼 이리 자주 씻는단 말인가. 강릉에게 미안하다.
단편소설을 읽었다. 익숙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는데 제목이 진해서 끌렸다. '파프리카'. 싫어하는 채소다. 먹지 않으니 읽기라도. 애쓰며 살지 않은 적이 없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힘겨운 순간 앞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흰 콩떡>, <누수>, <방>, <구인>. 단순하지만 복잡한 문제, 또는 복잡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답은 간단한 일.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우리는 스스로의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그걸 완전히 해소할 능력이 없다. 때론 틀린 줄 알면서도 그냥 갈 수밖에 없기도 하다. 작가는 답을 내지 않았고 한쪽으로 유도하지도 않았다.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읽은 책은 북스타그램에 올린다. 교보문고 미리 보기에서 표지를 따려고 앱에 들어가 '파프리카'를 검색했다. 내가 읽은 김지현 작가의 파프리카는 안 나온다. 농촌진흥청에서 나온 농업기술 책이나 요리 책이 전부다. 다시 앞으로 가 검색창에 파. 프. 리. 카를 또박또박 쳤다. 없다. 등록이 안 된 건가? 앞과 뒤를 헤아리며 서지 정보가 제대로인지 보았다. 문제없어 보인다. 오줌이 마려 화장실에 갔다. 몸에 찬 물을 덜어내고 손까지 씻으니 1kg은 줄은 것 같은 가벼움에 정신까지 맑아진다. 교보문고에 전화해 보아야겠다. 책상의 휴지를 뽑아 물기를 닦으며 책을 내려다보았다. '파브리카' 파프리카가 아닌 김지현의 <파브리카>.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막내가 받는다.
"지언아, 베란다에 남자 팬티 몇 개 널렸는지 세어 줄래?"
"여섯 개요."
틀린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