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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님

5. 강천산 - 남편이 오른 100대 명산

by 황옹졸

"인천고모 많이 안 좋으신가 봐. 의사가 주변 정리를 하라 했다네. 어른들 모두 서울 올라가셨어."

"아...... 그랬구나. 자기는?"

"뭐 하러 나까지, 정신 사납게. 강천산 올랐다 집으로 갈게."


결혼하고 나서야 시댁이 큰집이라는 걸 알았다. 내일은 할아버지 제사라 본가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남편은 제사에 관한 어떤 언급도 없었다. 일 년에 몇 번인지 사람이 얼마나 모이는지 음식은 얼마나 하는지 몇 시까지 있어야 하는지 나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지. 그저, 친척이 다 모이니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친정은 교회를 다녀 제사를 경험해 본 일이 없다. 친가고 외가고 왕래가 잦은 편이 아니라 명절에도 항상 단출했다. 할머니, 엄마, 나, 동생.


마당에 들어서니 수돗가에서 커다란 채반을 씻고 계신 어머니가 급히 일어나셨다. 나를 마당 한 귀퉁이로 데려가시더니 "옹졸아, 너와 내가 중요해. 당연히 힘들지, 그래도 일 년에 딱 두 번이야. 우리가 수고를 감수하면 식구들이 화목하고 좋잖니. 어른들 오면 인사 잘하고 설거지만 좀 거들다 저녁에 일찍 가렴." 지금껏 사회에 기여한 것도 없는데 여기에서 나의 수고가 평화에 쓰인다니

마음에 드는 제안이었다.


부엌으로 갔다. 커다란 전기 프라이팬 두 개가 펼쳐져 있었고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여자들이 둘러앉아있었다. 어머니는 작은엄마들이라며 나를 인사시켰다. 나는 두 손을 배꼽 밑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푹 숙였다. 모두 나에게 좋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커다란 냄비가 올려진 가스레인지의 불은 강렬한 파랑으로 활활 거리고 개수대에 틀어진 물은 분주하고 경쾌했다. 나는 어디에 내 몸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어깨를 움츠리고 손을 맞잡아 비볐다. 작은어머니 한 분이 엉덩이를 들썩하시더니 공간을 만들어 "새색시 여기 앉으소."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무젓가락 하나를 쥐어 주었다. 새송이버섯, 동그랑땡, 산적, 고추전, 명태포, 새우전. 세상에 부칠 수 있는 건 다 부치는 것 같다. 이제 한 집안사람이 되었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들과 둘러앉아 다정하게 전을 부치는 일은 거의 극한 체험이다. 모두 능숙하게 일을 하는 틈에서 나는 똥이든 오줌이든 곧 싸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몸짓으로 나무젓가락을 팬에 댔다 다 만을 반복했다.


손님은 계속 왔다. 큰고모, 큰아버지, 이리 작은아빠, 택시 작은아빠, 방앗간 작은 아빠, 쌍문동 고모. 외에도 더 있는데 순서와 이름을 그날 다 외우기는 힘들었다. 이 집 사람들은 화목했다. 일 년에 딱 두 번이라는 어머니의 희생이 한몫하였으리라. 지난달 내 결혼식에서 만났을 텐데 십수 년 만에 본 듯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악수를 세차게 하고 등을 여러 번 비비고 토닥거렸다. 나에게는 악수를 청했다. 부치는 일이 마무리될 때쯤 작은엄마들이 그만하고 나가 쉬라며 내몰랐다. 나의 몸을 있게 할 곳을 찾아 나섰다. 거실 소파에는 연장자 여자 어른들이 앉아 티브이를 보며 담소를 나눴고 그 한쪽으론 술상이 차려져 권위를 가진 남자들이 주거니 받거니 했다. 나는 빼꼼 안방 문을 열었다. 남편의 사촌여동생 한 무리가 모여 참새처럼 지저귀고 있었다. "어머, 새언니!"를 외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저들끼리 해맑게 웃었다. 나도 활짝 웃어 보였다. 안방 옆의 작은방 문을 열어 보았다. 남편의 사촌 남동생 두어 명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고개를 들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형수님." 하길래 목례를 하고 문을 닫아 주었다. 마지막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마지막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였다. 두 남자가 이불을 깔고 새우 자세로 잠을 자고 있다. 하나는 남편이라는 사람이고 하나는 그의 동생. 갈 곳이 마땅찮을 땐 화장실이 적당하다. 누가 노크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았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이 기름기로 번들번들했다. 그리고 퀭한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나의 엄마와 할머니 동생이 떠올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문득 새색시가 똥을 오래 싼다고 생각할까 봐 황급히 나왔다. 어디 몸 둘 때가 마땅치 않아 부엌으로 다시 가 한쪽 귀퉁이에 서서 능숙한 여자들의 몸놀림을 지켜보았다. 섞이지 못하고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고약했다.


그때, 큰 소리로 "나왔어!"외치며 하얀 머리카락 정말로 하얀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은색이나 검정이 단 한 가닥도 섞여 있지 않았다. 얼굴도 머리카락만큼 뽀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머니가 인천고모라며 인사하라고 했다. 거실로 쭈뼛이 걸으며 고모님이 날 보길 기다렸다. 이 사람 저 사람과 진하게 인사를 하고 내가 서 있는 걸 알아차리셨다. "어머머머, 우리 집 새사람이네! 아이고 이쁘기도 하여라." 내 손을 덥석 잡으며 "한 번 안아 봐도 될까?"라고 말했다. 허락은 구했지만 답은 듣지 않은 채로 나를 꽉 안았다. 그 품이 예상치 않게 따뜻했다.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아니 그런데 새신랑 어딨어? 색시를 혼자 두고 어디서 뭐 하는 거야?" 새신랑이 큰 소리에 놀라 방에서 나왔다. "올케, 이 사람 뭐 할 줄 안다고 붙들어 놔. 어서 보내보내." 나의 시어머니는 그렇잖아도 보낼 참이라고 했다. 양속 가득 싸 준 음식을 든 채로 다시 친척들에게 인사했다. 아버지는 9남매로 그날 모인 사람이 서른 명쯤 되었다. 고모님은 차를 타려는 나에게 바짝 붙어 소곤소곤 말했다. "저 녀석이 잘해 주지? 애는 착해. 아들이다 생각하고 데리고 살아. 다 그런 거야. 오늘 너무 수고했어" 두 번 접은 종이봉투를 손에 쥐어 주었다. 아마 돈이 들어 있으리라.


자동차 시동을 켜자 눈물이 터졌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왜 왜,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시집살이시켰어?" 바보 같은 자식이다.

"차 세워."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멈췄다.

"기름이 되어 본 적 없지? 자기는 하얀 머리 고모님 댁에 산 줄 알아."




하얀 머리 고모님은 고모부가 먼저 떠나신 후로 급격히 쇠약지셨다. 이전의 당신으로 회복하지 못할 만큼.

덕분에 지금까지 살았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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