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Goodbye 육아

해 줄 말

논산훈련소

by 황옹졸

본래 어린애한테는 관심이 없어서 그랬는지 자식이라고 얼마나 이쁘려나 했다. 우리 엄마도 나를 금이야 옥이야 키운 건 아니라. 그런데 참, 이런 게 기적이지. 신생아실 커튼이 걷히고 간호사가 갓난이를 들어 보이는 순간 빠져버렸다. 주변의 사물은 모자이크 처리되고 그 애만 도드라져 광채가 났다. 눈 깜빡이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었다. 그렇게 자식은 사랑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사랑해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뇌와 심장의 가장 깊은 데서 애정이 올라왔다.



남편이 군대에 있을 때 쓴 일기가 몇 권 있다. 두서없이 펼쳐 읽었다. 선임에게 얼차려를 받고 매질을 당했는데 너무 아파 몸을 비틀다, 중앙의 급소를 맞아, 죽을 뻔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다음 날 그곳이 시커먼 보라색으로 멍들었다고. 읽는 게 고통스러워 덮어버렸다. 다시는 그 일기장을 펼쳐보지 않는다. 그런 곳에 내 아들을 보내야 하다니. 요즘 군대는 달라졌고 하지만 그래도 군대는 군대지. 남편을 보고 "당신은 다녀와서 좋겠다."라고 말했더니 헛웃음을 친다. 입대를 이틀 앞두고 머리를 밀고 왔다. 더 실감이 든다.


고3 때부터 교회 반주자로 섬겼다. 3년이 조금 못되니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수험생이라는 고난의 때, 마냥 놀고 싶었을 대학교 1학년, 올해는 휴학하고 군악대 시험 준비하던 초라한 시절이었다. 개인의 신상과 상관없이 반주는 했다. 돌아보니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었는데 성가대 지휘자께서 이 점을 높이 사주었다. 스무 살 머슴아가 이렇게까지 성실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하나님 주신 재능으로 하는 일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섬김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좀 쑥스럽기도 했지만 덩달아 어깨가 올라갔다. 오전 예배를 마치고 반주자가 바뀐다는 광고가 나왔다. 그리고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다. "주님께서 지성이의 구원자와 주되심으로 친히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안전하게 하시고 제대할 때까지 믿음의 사람으로 더 견고하게 복의 복을 더해 주소서." 떠나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여러 날 고민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들은 물리적으로 정신으로 거의 독립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더 의미 있는 말을 주고 싶었는데 찾지 못했다. 그런데 목사님 기도를 들으니 말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나님이 나의 부족한 혀를 아시고 이렇게 채워주시니 말이다. 예배가 끝나고 여러 사람이 와 잘 다녀오라고 어깨를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주머니 무언가를 푹 찔려 넣었다. 아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주일을 다 미치고 짐을 챙겨 어른들이 계시는 군산으로 출발했다. 할머니가 내일 떠나는 손주를 위해 좋아하는 것들로만 한상을 푸짐하게 차려 놓으셨다. 알이 밴 갈치토막을 아이 옆에 놓으며 "아이고, 내 새끼 이제 챙겨주는 사람도 없을 턴디. 그래도 나는 우리 손자가 군대 가니께 겁나게 기쁘다. 건강하게 컸으니께 군대도 가는 것 아니것어. 고맙다. 이쁘게 커서."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도 보태신다. "지성아, 너무 앞서지도 말고 너무 뒷거리에 있어도 안 되아, 뭔 소린지 알것지? 주는 대로 잘 먹고." 여기서도 내가 더 할 말은 없다. 아들은 저녁을 먹자마자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많이 자둘 모양이다.


훈련소에 좀 이르게 와 주차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까까머리를 한 아들 또래의 수많은 남자들이 있다. 저 안에서 우리 아들과 같이 지낼 사람이다 생각하니 예사로 보아 지지 않는다. 인상이 좋은지 나쁜지 유심히 살폈다. 사실 아침부터 아들 얼굴을 못 쳐보다 보고 있다. 녀석도 자꾸 눈을 피하고 고개를 돌린다. 식당에서도 말없이 다들 먹는 데에 집중했다. 입맛이 없었는데 또 먹으니 잘 들어간다.


무리가 가는 쪽으로 휩쓸렸다. 피엑스 앞이다. 교회 집사님이 슬퍼도 그곳에 가면 웃음이 날 거라더니 정말 그렇다. 물건도 좋고 정말 싸다. 그래도 조심조심 신중의 신중을 기해서 담았으나 9만 원이나 나와버렸다. 다시 무리를 따라 걸으니 연병장이다. 좋은 자리 대기석은 자리가 차 멀찍한 데로 가 앉았다. 본부석에서 여러 가지 안내 사항을 말해 주더니 훈련병들에게 '부모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라고 한다. 여기저기 소리가 나긴 했지만 큰 울림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말한다며 '아들아 사랑한다.'를 하란다. 나는 좀 웃음이 났다. 이 쑥스러운 걸 어떻게 해낸단 말인가.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아들을 안아주십시오.'라고 했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놀랐다. 아무렇지 않으려고 애썼고 또 그런 것 같았는데 눈물이 주체가 안 된다. 등을 쓰다듬으며 잘 다녀오라고, '기도할게'라고 말했다. "엄마 울지 마요. 나 괜찮아."라고 말하는데 저도 좀 울먹한다. 훈련병은 앞으로 나오라고 명령하니 수많은 어린 남자들이 뛰쳐나간다. 대부분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리지만 개중에 다정한 아이들은 뒤를 돌아 손을 크게 흔들어 주기도 한다. 오늘 훈련병은 1230명이라고 한다. 아들의 걸음을 계속 쫓았는데 무리 속에 섞이니 잃어버렸다. 나는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덜컥 무서워 더 많이 울었다. 남편이 어깨를 빠르게 두드리더니 저기 있다고 울지 마라고 한다. 팔과 손가락을 쭉 뻗어 방향을 알려준다. 그 옛날 신생아실에서 처음 보았을 때처럼 다른 집 아이들은 다 모자이크처리가 되고 내 아들만 빛난다.


집에서는 징그럽게 말을 안 들었을 텐데 어느새 줄을 맞춰 서고 간단한 제식과 경례 연습을 했다. 신기하게도 한 번에 다 알아듣고 한다. 입소식은 10분도 안 되어 끝이 났다. 부모님들은 신속하게 가라는 안내가 나왔다. 본격적으로 잡도리를 하려나 보다. 걷는데 고개는 자꾸 뒤로 돌아간다.



목포로 돌아왔다. 저녁을 준비하려는데 싱크대에 토마토 세 개가 올려져 있다. 아들이 다 못 먹고 간 것이다. 날마다 토마토 1kg씩 먹는 토마토광이다. 그 안에서 이것이 얼마나 먹고 싶을까. 울면서 토마토를 썰고 설탕을 뿌려 두 번째 아들에게 가져다주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근 지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