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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무료도로로

9. 천관산 - 남편이 오른 100대 산

by 황옹졸

자고 나면 손발이 잘 부어 영 개운치가 않는데 변산에 다녀오고부터는 몸이 훨씬 가볍다. 살짝 아프고 무겁던 오른쪽 어깨도 증상이 덜하다. 땀을 두 바가지는 흘려 노폐물이 많이 빠졌는지 속살이 더 부를부들 해 손이 자꾸 배를 만지게 된다. 연휴에 또 오른다기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검색하더니 천관산이 좋겠단다. 초보도 쉽게 가는 데라면서. 쉽게? 흥. 산사람의 말을 다 믿지는 않기로 했다. 나 진짜 변산에 토할 뻔했다.


일찍 다녀오려고 했더니 엄마한테서 마늘 밭 비닐 씌우는 것 좀 도와줄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옆에서 듣던 남편이 알겠다고 손짓한다. 말이 들어가는 구멍을 손으로 막고 산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서둘러하고 오후에 가면 된단다. 나는 체력을 아끼려고 집에 남았다. 대신 둘째 아들을 보냈다. 여덟 시에 집을 나섰던 남자들이 열두 시가 넘어서야 왔다. 얼마나 고됐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반쪽이다. 아들은 농사보다 공부가 쉬운 것 같다며 학업 매진을 긍정 검토하겠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자식을 향한 로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공부를 하든 땅을 갈든 각기 인생 아닌가, 저 알아서 할 일이라 대꾸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산에 갈 수 있겠냐고 걱정스레 물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섰다. 해와 바람이 적당한 기운을 뿜는다. 가을. 이것이 가을이구나. 탑산사가 시작점이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고속도로를 안 타는 무료도로를 누르니 몇 분 더 늘어났다. 나의 짝꿍은 눈이 더 쳐진 것이 피곤해 뵌다. 진짜 괜찮겠냐고 하니 주먹을 불끈 쥐며 웃어 보인다. 핸들을 잡은 오른쪽 손을 가져와 주물렀다. "시원해?" "응." 다시 핸들을 잡게 하고 귓바퀴도 마사지했다. "시원해?" "어." 허벅지는 주먹으로 살살 두드려 주었다. "시원해?" "예." 내면에 불안이 높은 편이라 사람도 사랑도 믿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랑 신봉자다. 사랑만이 능력이서 밥을 먹여준다고 믿는다. 이건 성경이 알려주었다. 천사의 말을 해도 모든 지식을 알아도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할지 생각하면 복잡해진다.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적절히 어울려야 하는데 어렵다. 대체로 내 방식대로 한다. 오른손을 다시 가져다 깍지 끼었다. 요즘 이런 게 하고 싶단 말이지. 얼마 동안 가만히 있더니 슬그머니 뺀다. "왜, 옛날엔 이러고 서울까지도 운전했잖아." "이상해." 그렇다, 사실 나도 어색하다. 차라리 부둥껴안고 있는 건 아무렇지 않은데.


천관문학관을 지나 탑산사 주차장까지 가는 길 옆으로 크고 작은 돌탑이 빼곡했다. 너무 많은 소망들에 숨이 막힌다. 차를 대고 내려 신발 끈을 단단히 매고 모자도 단정히 썼다. 물이 들어 무거운 배낭은 남편이 짊어지고 나는 스틱만 들었다. 탑산사에서 불영봉을 거쳐 연대봉으로 가는 게 제일 쉬운 코스다. 내려올 때는 억새를 보려고 연대봉에서 닭봉을 거치기로 했다. 한 번 겪은 탓으로 각오를 단단히 해서인지 살살 잘 올라갔다. 그러나 역시 결의가 무색하게 숨이 곧 죽을 것처럼 찼다. 무리하게 뛰는 심장, 터질 것 같은 허벅지, 찢어질 것 같은 폐. 이것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몰라 그냥 헉헉 댈 뿐이다. 열 발 떼고 멈추고 열 발 떼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자기야,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천천히 천천히 해" 모두 나를 앞질러 갔는데 이보다 어떻게 천천히? 혼자 왔으면 온 산을 휘젓고 다녔을 텐데 좀 미안하다. 남편이 말한다. "있잖아, 작년에 막내랑 산에 왔을 때보다 뒤를 더 많이 돌아본다. 고개가 좀 아프네." "갸는 몸이 가볍잖아, 육중한 몸이 한 발짝 떼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물을 마시라며 생수병을 건넨다. 숨이 차니까 물도 안 먹힌다. 그래도 마셔야지, 저 사람 배낭을 좀 가볍게 하려면. 불영봉이다. 큰 바위들이 무더기로 쌓여 봉우리를 이루었다. 꼭대기에 메주 모양 같은 커다란 바위가 우뚝 서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하다. 부처님 얼굴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자꾸 봐도 신기해, 기암괴석이란 말이 딱 걸맞다. "답답하면 혼자 갔다 올래요? 나 여기 앉아 있을게." 말을 무시하고 손을 잡아당겨 일으킨다. 조금 평지가 나오더니 계단 지옥에 걸렸다. 이게 정녕 초보자 코스인가? 그래도 끝은 있어서 빠져나오니 완만한 능선이었다. 사방 겹겹이 포개진 산, 그 아래 펼쳐진 너른 들, 앞으로 멀리멀리 내닫는 바다, 올망졸망 오며 있는 사람의 집. 내 몸이 기대 사는 세상이 이렇게 찬란한 줄 몰랐다.


연대봉에 왔다. 정상석에 남편을 서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을 주라더니 날 찍으려 한다.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기념이니까. 정상석 옆으로 섰다. "다리 길고 날씬하게 나오게 찍어, 방법 알지?" 휴대폰을 이리저리 돌리고 앉았다 섰다를 하더니 보라고 건네준다. 갤러리로 가 확인했다. 이씨, 이 사람이 진짜. "아, 뭐야, 왜 이렇게 찍어, 줌을 왜 한 거야, 장군을 만들어놨네. 미쳤어!!!" "아니 그게 아니라 사람이 크게 나와야지." 발상이 영락없는 노인네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니 "오, 당신 잘 찍는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라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라 피식 웃고 말았다. 사람들이 칭송하는 억새는 내 눈엔 그저 그렇다. 어려서 촌에 살 때 많이 봤다.


닭봉으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경사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돌길 내리막이었다. 아까와 같이 이 사람이 앞서고 나는 뒤따랐다. 또 연신 고개를 돌려 잘 오고 있는지 본다. 더 비탈지고 돌이 험한 데서는 밟아야 할 데를 일러준다. 머뭇거리면 손을 뻗어 본인 몸을 의지하게 했다. 그러고 보니 여러 해 이 사람이 꽤 좋은 남자라는 걸 잊고 지냈다. 애도 아닌 펑펑한 아줌마의 짜증을 받아 내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불평이 한번 없이 적절한 유머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활력이 나게 한다. 오래전 반하게 된 핵심도 어떤 지경이든 차분한 여유와 다정을 잃지 않은 것이었는데. 살면서는 모든 싸움의 원인이 때를 안 가리는 여유 때문이었지만. 갑자기 사랑이 동해, "자기야, 진짜 자기는 훌륭한 사람이다, 오늘 존경해."라고 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려오기나 해."라고 한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다. "윽!"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는데 아주 차분해 놀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남편이 걸음을 멈추고 오른손으로 왼손 손가락을 꽉 잡고 있다. "왜 그래?" "말벌에 쏘였어." 말벌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8시 뉴스가 스치고 지나갔다. 말벌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는 기사는 매해 단골처럼 나오지 않던가? 나는 남편이 곧 죽기라도 할 것처럼 흐느꼈다. "어디 어디 어딘데 어딜 쏘였는데." 왼쪽 약지를 꽉 누른다. "아, 됐다, 침은 빠진 것 같아. 나무를 짚었는데 거기에 있더라고. 아, 되게 아픈데." 전화기를 꺼내 네이버를 터치하고 '말벌에 쏘였을 때'를 검색했다. AI 브리핑이 친절하게 나온다. 쇼크, 호흡곤란, 독액, 지체 없이 병원. 문장으로 읽히지 않고 단어, 단어가 눈으로 들어온다.


타고 온 차는 남편만 운전하게 보험이 되어있다. 나는 또 울먹이며 "운전할 수 있겠어?"라고 했다."암시랑 안혀, 타." 벌에 쏘인 손가락을 세심히 보았다. 손가락이 계속 통통해진다. 벌이 계속 쏘고 있는 것 같은 아픔에 양 옆 손가락이 감각이 없다고 한다. 손이 하얗다.


"어디로 가지, 장흥에 큰 병원 응급실이 있나? 아, 강진의료원으로 가자."

"병원은 무슨 병원이야, 집으로 가. 괜찮을 거야."

"죽고 싶어? 무슨 소리야, 말벌은 착한 꿀벌이랑 다르대. 가서 주사 맞아야 해."

"그러면 그냥 목포로 가."

"가는 동안 무슨 일 있으면 어떡해. 너무 멀잖아."

"강진안 목포나 별 차이 안 나, 한국병원 찍어."


목포한국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니까 말벌 쏘인 환자를 위한 대비가 더 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내비의 가장 앞에 나오는 실시간 추전 길을 터치하고 안내 시작을 눌렀다.

"무료도로로."

"뭐? 이 와중에 무슨 무료도로야, 빨리 가야지, 아낄 걸 아껴."

"시간 차이 별로 없어."

"1분이 급하잖아, 응급실을 무료도로로 느긋하게 가는 사람이 어딨어!!!"


동했던 사랑은 꺼지고 신경질만 부푼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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