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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얼굴의 선배

13. 마이산 - 남편이 오른 100대 명산

by 황옹졸

멀리 가면 새로워지는 줄 알았다. 가진 것들이 모두 구질구질했다. 가난하고 추레한 집에 촌스러운 식구들. 후진 학교 기죽은 친구들. 순전한 자격지심으로 이것들이 나에게 준 직접적인 피해는 없음에도 떨어내고 싶었다. 새롭게 되는 게 뭔지도 몰랐으면서. 당당하되 좀 더 세련된 몸짓을 구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향에선 초라한 것을 만회하려 크게 행동하고 과장해서 웃었기 때문이다.


멀리 가 봤자 대한민국이었고 남에서 북으로 조금 이동한 같은 전라도였다. 그것도 지방 사립대. 불만은 많지만 좀 순진한 열아홉 소녀에게 버스를 타고 네 시간이나 가는 길은 멀고 대륙을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2월에서 3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고작 한 달 사이에 정말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 낯선 공기. 3월의 공기처럼 차가우면서 싱그러웠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가수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혼자 앞에 서는 걸 할 수 없었다. 다른 방편으로 합창을 했다. 학교에 합창단이 두 개였다. 한 군데는 오디션을 치렀고 다른 데는 없었다. 오디션을 보는 데가 규모가 크고 실력도 좋았다. 나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새로 사귄 친구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러면서 오디션에 같이 가자고 했다. 학생회관 3층에 있는 동아리방으로 갔다. 얼굴이 네모난 키가 큰 남자가 우릴 맞았다. 경영학과 4학년이라고 했다. 친구는 긴장한 탓인지 갈라지는 목소리로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했다. 남자는 대뜸 교회에 다니는지 물었고 그런다고 하니 찬송가 432장을 부르고 했다. 친구는 어려운 길을 선택한 자답게 용기가 있어 스스럼없이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용기와 실력이 비례하진 않았으나 가사는 무척 감동스러웠다. 나한테도 부를 것이냐 물었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니 어느 교회에 다니냐고 물었다. 타지에서 와 아직 정한 교회가 없다고 했다. 이면지와 모나미 볼펜을 주면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키가 크고 얼굴이 네모난 남자를 선배라고 불렀다. 그 선배는 일요일마다 덜덜 거리는 티코를 타고 날 데리러 왔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교회였다. 목사님 설교도 좋았고 교인들도 친절했다. 선배는 목소리도 행동도 크고 자기주장에도 거침이 없었지만 남이 말할 땐 진중하게 들었다. 선배의 그런 면이 좋아 그를 따라 열심히 다녔다. 나는 그곳에서 애써 목소리를 낮추고 행동도 다소곳이 하려고 애썼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해서.


은행알이 거리에서 향을 내뿜은 때에 야유회를 갔다. '마이산'으로. 유달산만을 산으로 알았는데 마이산은 정말 혁명 같았다. 산이 저럴 수도 있구나. 두 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헐벗은 누군가의 매끈한 몸처럼 보여 쳐다보는 게 어려웠다. 산행은 왁자지껄했고 여러 또래와 어울리는 것과 다양한 세대의 말을 듣는 게 즐거웠다. 새로운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 바르게 행동하고 있는지 조차 다 까먹을 정도로. 꼭대기에 다다라서는 매우 가팔랐고 줄을 잡고 올라가야 했다. 겁내하는 나를 위해 선배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잡았다. 그래도 별 이성적인 감동이 없었는데 그건 선배의 얼굴이 너무 네모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닐 것 같지 않은 산길 깊숙한 보리밥 집에서 저녁을 먹고 교인들은 헤어졌다. 나와 선배는 방향이 같은 머리카락이 하얀 장로님의 차를 얻어 탔다. 한참을 말없이 가다 장로님이 입을 열었다. 지난한 인생사를 풀으며 결국은 열심히 하라는 결론을 맺었다. 그리고 질문을 하셨다. 고향은 어딘지, 부모님은 뭐 하시는지, 꿈은 무엇인지, 공부는 잘하는지 못하는지. 나는 그의 질문에 가감 없이 답을 했다. 고향은 남도의 어느 섬마을이며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있다, 꿈은 없으며 공부를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잠시 잊고 있던, 떨어내 버리려 했던 사실들이 아직 버려지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말을 하면서 영원히 그것은 내 것이며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다는 게 아닌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난 섬에 화산폭발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이상, 아빠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엄마가 복권이라도 당첨돼 벼락부자가 되지 않는 이상, 갑자기 머리가 비상해져 공부를 잘하게 되는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난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장로님은 다시 자기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얘기했고 자기도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지금은 먹고살만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듣는 장로님의 이야기가 지루해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대학 원룸가 근처에 나와 선배를 내려주었다. 선배와 내 자취방은 반대 방향이어서 짧게 잘 가라는 말만 하고 등을 돌렸다. 열 발쯤 걸었을까 선배를 나를 불렀다. 그러고는 내 쪽으로 뛰어왔다.

-야, 황옹졸이. 너는 무슨 애가. 그래 애였지, 니가 애라는 걸 깜박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몇 년 더 산 선배로 하나 일러 줄게. 그런 말하지 마. 물어본다고 아무한테나 너풀너풀 니 신상 다 늘어놓지 말라 말이야. 앞에서는 생각해 주는 것 같아도 뒤론 무시해. 몰랐어? 사람이란 종자가 원래 그래.

-선배는 어떻게 알았어요?


선배는 내 질문을 답을 하지 않고 뒤돌아 뛰어갔다. 짐작만 했다. 선배의 말과 행동이 큰 것이 나와 같은 이유는 아닐까 하고. 내 초라한 환경이 나에게 기필코 해가 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들이 왜 싫었을까. 동정과 무시의 중간쯤을 나는 어려서 잘 헤어지리지 몰랐을지 모른다. 그래서 불편했을지도. 영민한 선배는 그걸 잘 알아차렸고. 나는 선배의 충고에 수긍했지만 삶에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지저분한 걸 떨어내 버리는 것보다 거짓으로 위장하는 게 더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배가 거짓말을 하라고 시킨 건 아니다. 말을 하지 말라고 했지.


후로 그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선배를 만나지 않았다. 새로워 지는 건 멀리 가는 일이 아니라 도망치지 않는 용기라는 걸 깨달았지만 실천은 어려웠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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