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가을이 깊었다.
나도 모르게 가을이 이렇게 깊어 있다.
봄, 여름을 사투를 하며 지나왔다.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몸을 어떻게든 추슬러 가며 험한 여름을 보냈다.
찬바람이 부는 걸 느끼면서도 가을이 이리 깊어진 줄 몰랐다.
마치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걷다 갑자기 초록이 단풍으로 바뀌는 마법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더 이 마법을 즐길 수 있을까..
요양원에서 일하는 특혜 중의 하나는 세월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온몸으로 매 순간 깨닫는 것이다.
어젯밤 야근 근무 중.
그 어르신이 다시 시작했다.
수영을 하러 다니셨는지 옷장에 코트가 있으니까 핸드폰을 꺼내다 달라는 게 매일밤 치러야 하는 의식이다. 와상이다.
당신 힘으로는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다. 그래도 옷 갈아입고 가야 한다고 끝없이 불러 댄다.
그 어르신의 봄날에는 수영도 다니셨고, 딸들과 미국 여행도 다니셨고.. 그런데 그 봄날이 갔다. 무성한 여름도 갔다. 이미 깊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든 어르신의 삶이 괜히 서글프다.
또 다른 어르신은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죽어야겠다고 하소연하신다. 그 어르신 역시 와상이다. 치매가 있지만 예쁜 치매다. 정신이 맑고 또렷할 때가 많다. 어르신의 그 말씀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1년 365일 누워만 있어야 하는 삶에 어떻게 소망을 가지시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였다.
세월은 흐르고..
우리는 누구나 그 세월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른 계절도 있는데 왜 유독 이 가을이 더 서글픈지 모르겠다.
건강하게 살아 보고 싶어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태어나기를 별나게 태어났다. 노화라는 과정까지 겪고 있다. 어쩌면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내 안에 있다.
깊어가는 이 가을이 서글픈 이유인가 보다.
그래도 나는 오뚝이였고, 지금도 오뚝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뚝이로 살아갈 거다.
깊어가는 가을에 아주 잠깐만 서글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