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매일 시 한 편씩을 읽고 있다. 정확하게는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쓰고 있다.
지난 여름.
갑자기 엄마가 치매가 의심 된다는 올케의 전화를 받았다. 보건소 치매 검사에서도 추가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결과였다.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매일 책도 읽으시고, 영양제도 잘 챙겨 드시는 엄마다. 그래도 치매가 내가 피한다고 피해지는 일이 아닌 것을 잘 안다.
치매로 진단이 나온다 해도 아직은 초기일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궁리 끝에 우선 시작한 일이 매일 시를 보내 드리는 일이다.
엄마는 시를 좋아 한다. 작년에는 매주 시를 쓰는 연습도 했었다. 기억하고 있는 시들을 읽고 예전의 감정을 떠올리고 기억할 수 있는 한 외워도 보자는 의도였다.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려 왔다. 매일 아침 시 한편을 카톡으로 보낸다. 분명히 엄마를 위해 시작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더 큰 축복을 받고 있다.
향수, 사슴, 모란이 피기까지, 광야, 나그네..
옛날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시들.
라이나 마리아 릴케, 하인리히 하이네, 예이츠..
십대 때 푹 빠졌던 시들을 매일 읽고, 쓴다.
그냥 시만 보내자 했는데..
그 시들을 다시 읽으며 떠오르는 감정들이 자꾸 보태진다.
엉겁결에 매일 감상문을 짧게 쓰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의 말랑한 감성들이 다시 채워진다. 가슴이 촉촉해진다.
나는 흘려버리는 것들을 시인들은 놓치지 않음에 감탄을 넘어 부러움이 온다. 같은 일들을 이렇게 시의 눈으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축복 받은 시인들이다. 그렇게 그 시들은 내 눈을, 마음을 연다.
처음에는 매일 시를 카톡으로 보내는 일이 조금 번거롭다 했다. 이제는 매일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행복하다. 내 가슴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채워지는 시간이다.
말씀은 안하셔도 두 달 가까이 매일 이어지는 시가 엄마에게도 일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매일 어떤 시를 보낼까 기대도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시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다. 아직 시를 이야기 하고 읽은 책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엄마가 있다.
11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나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