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엄마랑 여행 갈거다
너랑은 못 다니겠다.
돈을 함부로 그렇게 써대니..
엄마와 함께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가을 단풍 구경도 하고 집에만 계시니까 바람도 쐬드리고 새로운 경험도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도착한 후 첫 번째 코스는 지인에게 소개받은 전통 찻집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분위기도 쌍화차 맛도 너무 좋아서 엄마에게 제대로 대접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좋았다.
가격을 보신 엄마가 뭐가 이렇게 비싸냐고 못마땅해하셨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저녁은 호숫가 뷰 브런치 카페에서 좋아하시는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다. 가격이 숨이 멎을 정도였다. 엄마가 아니면 절대 안 먹을 가격이지만 눈 딱 감고 주문했다. 맛있게 드시면서도 이렇게 비싼 걸 먹냐고 계속 뭐라고 하셨다.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지만 참았다.
다음날 점심 식사.
새로운 맛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찾아서 모시고 갔다. 너무 맛있다고 잘 드셨다. 웬일로 얼마냐고 묻지 않으셔서 조마조마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역시나였다. 식사를 하고 차를 타고 식당을 나서며 여기는 얼마 줬냐 물으셨다.
가격을 말씀드렸더니 못마땅하시지만 그래도 맛있었다고 넘어가 주셨다.
전날 엄마가 쌍화차를 너무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마지막으로 쌍화차 한 번 더 드시고 가자고 모시고 갔다. 자꾸 돈 쓴다고 뭐라고 하시면서도 어떻게 하실 수 없으니 따라오실 수밖에! 기사는 나니까!
찻집에서 선물용으로 파는 쌍화차 한 박스를 사 드렸다. 냉동실에 넣어 두면 오래 둬도 된다니까 드시고 싶을 때 데워 드시라는 뜻이었다. 결국 이 지점에서 엄마가 폭발했다.
너랑은 못 다니겠다.
돈을 이렇게 써대니..
엄마를 위해 온 여행인데 내가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너무 속 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모시고 나왔는데, 뭐든 좋은 건 다 해 드리고 싶은 마음뿐인데..
난 생각 없이 비싼 밥 사 먹고 돈을 물 쓰듯 써대는 생각 없는 여편네가 된 기분이었다.
아끼고 살았다. 엄마가 아니라면 이틀 연속 비싼 쌍화차 먹으러 가지도 않았다. 호숫가 아니라 물 속이라도 그렇게 비싼 저녁은 절대 안 먹는다. 엄마라서,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제는 누려도 되는데..
엄마는 평생 병치레를 하는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당연히 가족의 생계도 엄마 몫이었다. 그 시절 양장점을 하며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던 엄마다. 난 지금도 가끔 꿈을 꾼다. 양장점 뒷방에 있던 공장에서 혼자 재봉틀을 돌리는 엄마를 본다. 꿈에서도 가슴이 아려서 양장점 안을 왔다 갔다 하다 깬다.
고생한 보람만큼 아들들 잘 키우셨다. 이 정도면 엄마한테는 효자들이다. 며느리들조차 엄마의 수고를 인정한다. 당연히 엄마가 누릴 자격 있다고 누리시라고 말한다.
우리를 키우며 아끼는 것 외에는 살아갈 길이 없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이제는 엄마가 누리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이해를 하면서도 여행 내내 돈 쓰는 거에 신경 쓰느라 누리지 못하는 엄마한테 화가 났다.
사실 그렇게 살림 구멍날 큰돈도 아닌데 돈 쓰는 것. 그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가 안타까웠다. 저렇게 스트레스받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안 모시고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이 된다.
엄마 나이 85세.
이제부터는 한해 한해, 아니 한 계절, 계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연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후회하기 싫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아도 자주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