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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그녀는 내게 사랑을 주고 떠났다

▶ 창밖에 내리는 눈은 아름답다

by 방현일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학원 복도 자판기 앞에서였다. 오래전, 나는 의상 학원에서 패턴과 재단을 배우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동전 한 개를 꺼내어 자판기에 넣고 버튼을 눌러 댔다. 그녀는 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그녀를 흘끗 보았다. 그녀는 내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고 나는 고개를 숙이다 그녀가 쑥스러워할까 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손을 폈고 그녀의 손바닥 위엔 100원짜리 동전이 하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자판기에 500원이 아닌 100원을 넣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환하게 웃던 그녀의 웃음을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다음날 그녀에게 100원을 주겠다는 명목하에, 평소에 입던 청바지 대신에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학원 강의실 곳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어제 오후에 학원 과정을 모두 수료했다고 했다. 유학 얘기도 있고 취업 얘기도 있고 그녀에 대해서 분분했다. 어렵게 알아낸 것은 그녀의 이름뿐이었다. 잠깐 스쳐 지나간 그녀의 첫인상은 나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지만, 그때의 나로서는 뭘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업무차 반포동에 있는 K 건물에 들어갔다. 1층에서 디자인실을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자판기에 눈이 갔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래전 잊을 수 없었던, 환한 웃음의 천사 같던 그녀의 모습이었다. 나는 반가운 나머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다가갔다. 그때 그녀를 부르며 다가온 낯선 사내는 그녀의 허리를 자신의 팔로 감싸 쥔 채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사위가 어둑해지더니 눈이 내렸다. 나는 길가에 서 있다가 무작정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유리 바깥으로 날리는 눈을 바라만 보았다. 그녀는 내게 사랑을 주고 떠났다.

공중전화 합.jpg

- 끝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Image by Patrick from Pixabay” “Image by maksim-sislo-2oxl1dYWk0k-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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