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식이 희소식?_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으며….
“잘 있냐? 아내하고 불꽃놀이 구경한다.”
자정이 가까운 무렵, 친구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 감사 때문에 밤새워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준비할 서류들을 맞추느라, 왼쪽 검지가 커터 칼에 베여 피를 철철 흐르고 있는 줄도 몰랐다. 전날 밤을 새운 까닭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동료 직원의 소리에 놀라 쳐다보니 철해놓은 표지를 붉게 물들여 놓고 있었다.
“들리냐? 저 소리.”
“팔자 좋네, 불꽃놀이라니.”
‘그 시간에 불꽃놀이라니.’
아침이 되고 감사를 무사히 마쳤다. 다음엔 미리미리 해두어야지 하며 어깨와 허리를 주물러댔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어제 전화 왔었던 친구의 목소리가 문득 떠올랐다. 한숨을 돌린 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직장으로 전화했고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자정에 불꽃놀이를 즐기질 않나,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지 않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하자마자 친구의 직장으로 갔고 친구의 직장 동료를 만났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갑자기 사표를 써서.”
서둘러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아무 일 없기를 바랐다. 평상시 잘 안 했던 기도문을 억지로 외우며 친구가 무사하기를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갑자기 쓰러지신 부모님의 병원비를 대느라, 친구는 임신 만삭인 아내와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에 살았다.
“자, 한 잔 따라봐라 내 알지? 무엇보다 네가 잘되는 게 내 소원이다.”
“소원이 그렇게 없냐! 내 걱정 말고 너 단칸방이라도 하나 얻어야지, 곧 애도 태어날 텐데.”
삭막 그 자체였다. 이미 태풍이 휩쓸다시피 한 그 적막함,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났다.
'이 새끼 불꽃놀이 구경한다더니.'
거대한 굴삭기를 뒤로한 채, 물끄러미 초토화된 현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났다. 할아버지가 다가와 씁쓸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덩치 크고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사람들을 마구 때리고, 비닐하우스촌을 불태우더니 몽둥이로 물건들을 다 때려 부수고, 사람들이 얽히고설키고 너무 무섭고 끔찍했지.”
할아버지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뒷짐을 쥔 채, 허공을 응시했다.
“인마, 나 학교에 취직했어. 네 공이 컸다. 고맙다.”
“그런 소리 마라, 내가 한 게 뭐 있냐.”
“내가 취직 못하고 서점에서 시간 보내고 있을 때 네가 전화해서 밥 사주고, 네 형편 알면서도 그걸 넙죽 받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네 지갑 사정 뻔히 알면서도 차비 하라며 돈 준 것 나 잊지 못한다. 꼭 갚을게.”
“친구끼리 그 정도도 못 하냐, 신경 쓰지 마라.”
“인마,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해.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울게.”
‘미안하다, 친구야. 결혼식 날, 야외 촬영은커녕, 그 흔한 비디오 촬영도 없이 사진 달랑 하나 찍고 그걸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내가 너무 미안했다. 처음에 결혼한다고 했을 때 네가 갖고 있는 아픔도 모자라 그녀의 슬픔도 짊어지고 간다고 해서 무척 가슴 아팠다. 물론 네 할머니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 온종일 봉제공장에서 시달리고 그 하루 쉬는 일요일 너의 집에 와서 네 할머니 변으로 얼룩진 옷들을 찬물로 빨래하는 것에 프러포즈했다는 너, 그녀와 함께 생전 밖에서 처음 먹었다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했던 무표정한 너의 표정에 내 마음 미어진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다고 네가 어디 가서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쓸쓸히 돌아서 나오는데 아이 둘이 내 옆을 지나가며 이야기했다.
“고맙다, 근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어? 나 괴롭혔던 그놈 키가 우리 반에서 제일 크던데.”
“키 크다고 싸움 잘하냐? 싸움은 깡이야, 깡.”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큰 반 아이가 나를 괴롭혔고 그때 그 친구가 나서서 도와줬다. 우리는 그 후로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내가 힘들고 지쳐갈 때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힘들고 지쳐 있었을 텐데, 술 먹고 투정이나 부렸다. 남자는 깡으로 살고 깡으로 죽는다는 말만 믿고 그 친구의 아픔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는 친구와 추억이 깃든 한강을 찾았다. 돗자리 위에서 아이가 즐겁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다정히 서로 기대어 웃고 있었고 아이는 앞에서 재롱을 부렸다. 가슴이 먹먹했다.
“내 꿈은 네가 잘되는 거 알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바닷가에 작은 슈퍼 하나 차려 줘라.”
나는 주말이면 바닷가 근처 슈퍼를 찾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친구야, 네가 잘되길 지금껏 밤낮으로 빌었다. 진심이다.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 열심히 살자꾸나. 고맙고 미안하다, 친구야.’
- 끝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Image by Nick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