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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사이언스 0과 1의 법칙

by 케이시르

컴퓨터가 생기고 지금까지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전자기기 비트라는 두 가지 숫자(0, 1)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혹시 지금 보고 있는 화면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0과 1만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이 믿기시나요? 저자는 컴퓨터로 밥을 빌어먹고 산지 30년이 된 사람인데도 사실 믿기지 않는다. 이 처럼 우리는 눈앞에 일어난 일들을 보고도 듣고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 분명한 숫자 0과 1로 무엇을 한 것이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확인해보려고 한다.



어른 장난감

컴퓨터는 매우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다. 전기신호를 보내면 1이 되고, 전기 신호를 차단하면 0이 되는 어쩌면 어린아이 장난감보다도 단순한 것이 컴퓨터 CPU이다. 다만 전기 신호를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ON/OFF를 제어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전기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전기가 필요한 곳은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들어진 전자기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도 전기 신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심장이 전기에 의해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지만 우리는 심장이 뛰어도 전기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전기이다.




디지털 표현 방식

디지털 공간에는 0과 1이 전부이기 때문에 전기신호 ON/OFF 배열하여 0과 1을 맞추면 디지털상에서는 CPU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 CPU는 아주 미세한 단자 안에 우리가 원하는 표현 방법에 따라 전기 신호를 민첩하게 처리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0과 1을 바꿔주는 회로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물질을 0과 1로 표현할 수 있는 값으로 약속을 하여 규격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앞의 네 자리 값은 텍스트, 음성인지 이미지, 영상인지 구분하였고, 그 값에 따라 뒤에 오는 숫자를 문자로 인식할지 색상으로 인식할지를 구분한다. 모든 문자는 아스키코드 숫자로 모든 색상은 RGB 컬러를 숫자로 규격을 정하여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었다.




디지털의 한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이 처럼 우리는 0과 1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기에 단순한 삶을 살아도 되지만 이것은 엄연히 디지털 공간의 관점이고 모니터라는 2차원 화면에 갇혀 표현된 한계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즉, 컴퓨터는 3차원에 사는 인간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도 국회에서는 새로운 약속을 정하기 위해 일하고 아직 검토조차 되지 않았고 만들어야 할 규칙들이 넘쳐난다.


이것은 마치 0과 1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던 세상에서 0과 1 사이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존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데이터 사이언스는 0과 1 사이에 있는 숫자들에 집중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았어도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발견하는 것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이다.



[번외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발견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바라본 성경 해석을 나누어 보려고 한다.


민수기 15장 32-40


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33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34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36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어떤 사람이 광야에서 안식일에 나무를 하고 있었다. 나무를 하고 있는 자를 발견하여 붙잡아 온 회중 앞에 끌고 왔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어긴 자를 어떻게 할지 몰라 가두어 두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치라고 하여 나무하던 자는 죽게 된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온 회중에게 옷 끝에 청색 끈을 단 수술을 달고 이 수술을 보고 나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고 "안식일에 나무를 하면 계명을 어긴 것이므로 죽게 되는구나"로 이해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계명을 어긴 자는 이미 죽고 없는데 온 회중 계명을 지킨 자들에게 갑자기 "왜 수술에 청색 끈을 옷에 달아 모든 계명을 기억하라고 했을까요?"



분명 광야는 풍족하지 않아 나무를 구하기 힘든 땅입니다. 그런데 안식일날 모두가 나무를 하지 않으니 그의 판단에는 엄청난 기회였을 것입니다. 또 온 회중 사람들은 안식일에 나무하는 자가 얄미웠을 것 같습니다. 결국 얄미운 그 사람을 고발하고 죽게 됨으로 내 마음이 평안을 얻었겠지요.


하지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인 나는 다른 시선이 보입니다. 왜 사람들은 안식일에 나무하는 자들이 보이죠? 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시간인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있나? 지키지 않나? 감시하며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식일은 나와 하나님 일대 일 교제의 시간을 주신 것인데, 사람들은 안식일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심판자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 나무하는 자를 죽인 것이 누구입니까? 계명을 어겨서 죽은 것인가요? 아니면 내가 죽인 것인가요?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사람은 나였고, 그를 죽인 것은 계명이 아닌 나였던 것이죠.


그리고 내가 염려되어 가르쳐 주신 것이 옷에 청색 끈을 단 수술이 있으면 그땐 나를 기억할래?라고 말씀하시면서 장치를 만들어 주어야 네가 나를 기억하겠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안식일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청색 끈을 단 수술을 의미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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