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중년의 삶을 위해
믿기지 않지만 어쩔 수없다.
내일모레 내가 반백살이 된다고?
나보다 내 나이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 덕에 알게 된 사실이다.
며칠 전 올해가 다 간다는 아쉬움을 이야기하다 자연스레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서른 중반이 되면서부터 나는 나이를 세지 않았다.
지금처럼 한 해가 지나갈 때, 병원 기록에 쓰여있는 내 이름옆의 숫자를 볼 때 문득 오래전 이사 간 짝꿍을 길에서 만난 것처럼 어색하다. 아직 마음은 청춘이라서 그런가.
내가 놀란 것은 생각보다 늙어서도 아니고 아쉬워서도 아니었다.
마음속에 오랜 시간 미뤄둔 "악기 연주해 보기"라는 인생 숙제의 만기가 어느덧 도래해서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교회 선생님께 피아노를 아주 잠깐 배웠다.
사실 배웠다기도 뭣한 것이 왼손을 건반에 올리고 손가락 자리를 배우다 그만뒀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아쉬웠고 미련이 남았다.
마치 감자튀김은 먹어보지 못하고 감자튀김 끝에 묻은 케첩만 찍어 먹어 본 느낌이랄까.
나는 먹어보지 못한 감자튀김의 맛을 상상하듯, 그렇게 피아노, 악기, 음악에 대한 상사병을 40년간 앓았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내게 사치였다.
7살에 만난 지금의 엄마는 없는 형편에도 동네 여자아이들처럼 나한테도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니지도 않았던 교회에 피아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손을 끌고 데려간 걸 보면 말이다.
나는 피아노 가방과 피아노책에 내 이름을 써본 적이 없다.
자기 몸만 한 커다란 피아노 가방을 질질 끌고 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이런 상상을 했다. 나도 모르게 피아노 가방에 쓰인 그 아이의 이름에 침을 발라 살살 지우고 그 위에 내 이름 세 글자를 가만히 써보는...
그러고는 누구한테 내 마음이 들켰을까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고 남모를 부끄러움에 혼자 두 볼이 발그레해졌다.
물론 검은색 매직이나 볼펜으로 쓰인 그 아이들이 이름이 현실에서 지워질 리도, 내게 멋진 피아노 가방이 생길 리도 만무했지만 상상 속에서 나는 아주 잠깐 예쁜 레이스 원피스를 입은 채 검은 피아노 앞에 앉아 멋지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쫄래쫄래 빈손으로 뛰어가 교회 한쪽에 위치한 작은 문을 열면 그 안에는 낮은 책장과 알록달록한 장난감, 벽에 붙은 색종이 꽃과 그림책이 보였다. 나의 시선은 한 참을 그곳에 머물렀다가 저 멀리 안쪽에 커다란 바위처럼 서있는 검은 피아노에게로 달려갔다. 사실 그때는 피아노보다 그 공간이 주는 낯선 풍경과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 더 컸던 것 같다. 나의 뇌리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문신처럼 남겨진 그때의 풍경이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녀본 적 없는 아이, 또래 친구도 없이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자라다 이제야 문명의 세계에 첫발을 들인 어리바리한 7살의 나. 나는 피아노보다는 어린이 책장과 꼬마 의자에 앉아 색종이 접기를 더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꼬마 의자에 앉아 그림책을 읽고 색종이를 오릴 행운 따위는 내게 없었다. 그곳은 내 자리가 아니었다.
앉은키보다 큰 피아노 앞에서 암호가 가득한 피아노 책을 펼치면 나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한글 공부를 위한 깍두기 열 칸 공책 말고 그럴듯한 책 한 권도 없던 내게 피아노 책은 큰 사이즈만큼이나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안 그래도 늦깎이 한글 공부로 골치가 아픈데 생전보도 듣지도 못한 콩나물 대가리라니. 당장 피아노 의자를 밀어내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손가락에서 튕겨져 나오는 맑은 피아노 소리는 줄행랑치려는 나를 붙잡아 주저앉히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암호 같은 피아노책에 쓰여있는 반가운 숫자였다. 손가락과 짝꿍을 이루는 숫자는 내 구세주였다. 손가락을 숫자에 맞춰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려 처음 낸 소리는 '도레~ 도레~ 도레'였다. 나는 내 엄지와 검지 손가락이 젓가락질이나 연필 잡을 때, 바지 지퍼를 올릴 때나 공기 놀이 할 때, 누군가가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를 부를 때 말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 쓰인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 아름다운 내 손가락, 널 이제야 알아보다니... '. 하지만 나에게는 늘 사용하던 믿음직스러운 오른손가락들과 달리 딱히 큰 쓰임이 없이 빈둥거리던 왼손가락들이 문제였다. 갑자기 피아노 건반 위에 줄 세워진 왼손가락들은 우왕좌왕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호명하는 숫자에도 자신의 차례를 못 알아듣는 얼뜨기들이었다. 지금 글자판을 보지 않고 키보드 자판을 열심히 치고 있는 왼손가락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여차저차 왼손가락들을 어르고 달래며 몇 날며칠을 연습한 끝에 겨우 건반을 익혀 대망의 왼손과 오른손의 합주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의 왼손가락들은 내 생각보다 더 얼뜨기들이어서 피아노 건반 위에서 길을 잃고 서로 엉키고 엉뚱한 소리를 뱉어냈다. 수차례의 불협 화음으로 짜증이난 나의 오른손가락들과 멍청한 내 머리와 왼손가락들이 서로 네 탓이라고 싸웠지만 인내심이 강한 교회 피아노 선생님만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선생님은 성경책 뒤에 쓰인 십계명 중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누구보다 잘 지키는 분이 분명했다. 이런 엉망인 나를 꾸짖지 않고 될 때까지 연습해서 확인받고 집에 가라는 넓고 무시무시한 아량을 베푸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혼자 남아서 왼손가락들을 어르고 달래고 꾸짖으며 피아노 건반 위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피아노 선생님과 나타났다.
맙소사 평소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던 앞집 양장점집 딸이자 동네 친구인 A가 피아노를 배운다고 온 것이다.
사실 동네 친구라고 했지만 나는 A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사귄 또래 첫 친구였지만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고 자기 집이 우리 집보다 잘 산다고 은근히, 아니 대놓고 뻐겼다. 그리고 그 큰 키를 이용해 자신이 놀다 불리해지면 나를 코너에 몰아 놓고 기분 나쁘게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겁을 줬다.
하필 그런 그 애와 같이 피아노를 배우다니...
불행하게도 피아노가 한 대뿐이라 우리는 서로 돌아가며 피아노를 쳤는데 그 애는 큰 키만큼 손가락도 길쭉길쭉해 금세 피아노 건반 위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녔다. 심지어 내가 몇 날며칠 연습한 왼손가락 연습도 순식간에 해치우고 나보다 먼저 양손 연주곡을 완벽하게 치기 시작했다.
이건 불길한 증조다.
(늘 그렇듯 어떤 예술가의 인생에 시련을 안겨주는 인물은 가까운 지인이다. 아, 물론 내가 예술가가 될뻔했다는 건 아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니나 다를까 A가 나를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가 나보다 피아노를 늦게 시작했는데 진도는 더 빠르다며 동네에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 말이 진짜냐고 묻는 친구들의 질문에 나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뜨린 달고나처럼 산산조각 나 바스러졌다.
더 이상 피아노 소리가 아름답지도 신비하지도 않았으며 어떤 날은 그저 우울한 장송곡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엄마에게 피아노를 관두고 싶다고 말했고 헛짓거리에 돈 쓰는 거라고 반대했던 아빠는 옳다 커니 하며 다시는 피아노 학원 보내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엄마와 내게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나의 첫 피아노는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뚜껑이 덮였다. 그 후로 나는 다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다.
가끔 피아노가 있는 공간에 가게 되면 조심스레 오른손가락으로 '도레~ 도레~' 건반을 눌러본다.
그리고 잠시 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음악에 심취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된 나를 상상해 본다.
'지금이라도 피아노를 다시 배워볼까?' 하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무래도 피아노 악보의 콩나물 대가리를 소화시키기에 내 머리는 편식이 너무 심하다.
피아노 이야기를 쓰다 보니 마음에 묻어두었던 '눈물의 멜로디언' 사건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음악에 대한 결핍과 사랑은 참 지독하게도 내 곁에 오랜 세월 들러붙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지독한 짝사랑이라면 중년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이 오십을 바라보며 악기 연주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걸 보면 죽기 전에 그 한풀이를 해야 되는 거 아닐까. 지금부터 배워서 30년 동안 음악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꽤 괜찮은 투자일지도 모른다.
나는 쿠팡 로켓 배송으로 검은색 피아ㄴ... 아니... 검은색 리코더를 주문한다.
높은음을 내야 하는 왼손가락들이 또 불만을 표하며 리코더 위에서 구멍을 찾아 우왕좌왕 부들부들 거리겠지만... 삑! 삑! 거리며 새는 높은음에 눈살이 조금 찡그려지겠지만. 그래도 뭔 훗날 기타를 배우겠다는 내 마음에 작은 용기를 심어주지 않을까.
온 국민이 초등학생 때 다뤄본 학기. "리코더"
이거라면 나도 음악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듣기만 하는 음악이 아니라 내 몸을 이용해 연주하는 음악.
생활 속에 음악이 있는 중년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혹시 모르지.... 리코더가 또 다른 악기가 있는 음악 세상을 열어주는 첫 열쇠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