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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연재를 마감합니다

<독서처방과 밑줄 프로젝트> 1~9권, 270일간의 연재를 마감하며

by 윤서린

<독서처방과 밑줄 프로젝트>를 아껴주신 구독자분들께.


안녕하세요. 윤서린입니다.

9개월간의 연재를 끝낸다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일까요.

새벽 4시,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집니다.


혼자 조용히 연재를 끝내려했으나 그동안 <독서처방과 밑줄프로젝트>를 아껴주신 구독자분들께 연재 종료에 대한 안내를 드리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수면장애, 우울증, 집중력 부족으로 책을 읽지 못한 20여 년의 시간을 보상해 주자는 마음으로 2025년 3월 3일 새벽독서를 시작하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책 내용을 정리하고 제 감상을 몇 줄 덧대던 초기 연재를 시작으로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필명도 "늘그래"였죠. 아마 오랜 시간 함께한 구독자분들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계시겠죠?


<독서처방과 밑줄 프로젝트>라는 연재북의 제목처럼 그때는 저에게 필요한 책과 읽고 싶은 책을 매일 같이 읽는 연습을 했습니다. 책 내용도 수험생처럼 정리해서 올렸었죠.

잠시 새벽출근 때문에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독서하고 글을 발행하기도 했었고, 폐렴으로 응급실에 가서도 몇 시간에 걸쳐 독서글을 올렸던 아찔했던 추억도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간절하게 저를 성장시키고 싶다는 마음과 지금의 루틴이 깨지면 예전의 저로 돌아가게 될까 봐 두려웠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으면서도 아침이면 책을 손에 쥐고 있었으니까요.

회진하시던 담당의사께서 이런 저를 보고 하신 말씀이 아직 귓가에 맴돕니다.

"이렇게 무리해서 아픈 것 같은데요..."

저를 성장시키고 싶다는 간절함이 제 몸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제가 독서기록을 하면서 날짜와 시간인증을 위해 휴대폰 화면을 캡처해 사진을 올리는 루틴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한차례 크게 아프고 난 후 차츰 시간에 대한 압박을 놓으려 5시에서 6시로 기상 시간을 늦추고 최근에는 또다시 아픈 탓에 7시 이후까지 아침독서 시간이 밀렸습니다. 처음 5시에서 6시로 시간이 미뤄졌을 때 큰 좌절감 같은게 찾아왔습니다. 새벽독서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죠. 한차례 더 시간에 대한 제 스스로와의 약속이 무너지고 7시가 넘어가자 일종의 자포자기 같은 마음도 잠시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희한하게도 몸이 아프니 다 수용되는 감정이더라고요.


내가 무엇 때문에 시간에 목매고 있는 것인지 반문했습니다.

새벽독서라는 타이틀을 놓기 싫어서 그랬을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결론은 '아니요'입니다.

저는 두려웠어요. 시간을 어기면 어느 순간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누워만 있는 존재로 돌아가게 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에 하루 몇 페이지라도 읽는 습관이 몸에 배어들었다는 것을요. 뭐라고 쓰고 싶은 마음에 메모장을 열고 끄적이고 있다는 것도요.

270일간의 독서와 짧은 글쓰기로 인해 저는 읽고 쓰는 일이 몸에 익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연재가 1권부터 9권에 이르는 동안 꽤 여러 책들을 맛봤습니다.

평소라면 첫 장도 펼치지 않았을 과학인문서적이나 고전철학책, 소설, 자기 계발서도 읽었네요.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도 완독 하는 기쁨도 맛보고, 삶이 힘들 때 꺼내서 큰 소리로 읽게 되는 책들도 만나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사피엔스>까지 재미있게 읽고 있으니 독서편식에서 어느 정도 탈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짧은 산문과 에세이, 시가 제 독서취향입니다.

제가 스토리보다 사유할 수 있는 문장이나 아름다운 표현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 문장을 만나 제 생각이 저 멀리 과거로 돌아가거나 현재의 깊숙한 심연으로 가라앉거나 저 멀리 우주로 펼쳐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다음 연재는 그런 저의 생각의 단상들을 기록해 보는 연재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오늘 새벽 <마음으로 쓰는 이야기>이라는 연재북을 하나 개설해서 글을 하나 간단히 썼습니다.

제가 책에서 발견한 문장 하나를 가지고 제 글을 짧게 쓰는 연습을 해보는 형식의 연재입니다.

하다 보면 또 여러 변화들이 생기겠지만 우선 시간 강박, 책 인증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저 '매일 읽고 쓰는 삶'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오늘이 271일 차인데 아마 이 카운트도 365일 차가 되면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년은 자축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인데 이 또한 포기 못한 강박이려나요. 이 정도는 괜찮겠죠?


그동안 <독서처방과 밑줄 프로젝트>를 지켜봐 주셨던 구독자님들께 연재의 마지막을 알려드려며,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쓰는 이야기> 연재를 소개합니다. 책에서 발견한 문장을에서 파생되는 여러 생각들에 제 마음을 담아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할 예정입니다.


눈치채고 계신 구독자분들이 계시겠지만 가끔은 윤서린이 아닌 또 다른 제가 글을 씁니다.

시와 노랫말은 "SMY"라는 제 이름의 이니셜로, 유쾌한 글은 "늘그래"라는 이름으로, 가끔 영감을 파는 고양이 "파니파니냥"으로 여러분 앞에 나타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읽고, 쓰는 삶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지금의 제가 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윤서린, SMY, 늘그래, 파니파니냥 올림. 2025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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