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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뿌리를 뻗는다 ]

[읽고 쓰는 삶 272일 차] 한강 <빛과 실>

by 윤서린


책에서 찾은 빛나는 문장


신기한 것은 작년에 완전히 죽은 줄 알았던 둥굴레가 야생화 씨앗들과 함께 다시 싹튼 것이다. 관중고사리도 그렇게 되살아나서 나를 놀라게 했는데….. 흙 위로 꼭 죽은 것처럼 보여도 뿌리가 살아 있으면 되살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_ 한강 <빛과 실> 115면


윤서린의 마음으로 쓰는 문장


[가만히 뿌리를 뻗는다]


키보다 높은 책장 위에 올려둔 화분이 하나 있다.

배수가 잘되는 자잘한 돌로 채워진 작은 화분.

햇빛을 향해 몸을 트는 가늘고 길게 늘어지는 식물이다.

이름은 모른다.

들었는데 잊었다.


여름에는 목마름을 심하게 타기 때문에 물을 자주 주었는데 선선해지니 잠시 게을러졌다.

역시나 잎이 말라죽었는데 마치 마른 시체처럼 주먹을 쥔 모양이다.

1년 넘게 잘 버텨줬는데 아쉬웠다.

주려고 떠왔던 물을 한 컵 부어줬다.

마지막 인사처럼.


며칠 뒤 수경식물의 물을 채우러 다시 책장 위의 화분들을 찾았다. 그때 죽은 줄만 알았던 식물에서 손톱만 한 싹이 나와있는 걸 발견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잠깐 멈칫했다.


이럴 때는 죽은 식물을 바로 치우지 않는 나의 게으름이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시 살아난 게 기특해서 물을 주었다.

목마름을 온몸으로 말하고 죽어간 잎사귀와 기약 없는 기다림에 버텨준 뿌리의 생명력에 작은 경의를 표했다.


화분에는 아직 마른 잎이 달려있다.

새싹이 어느 정도 자라나면 그때 마른 잎과 새로운 잎의 세대교체식이 있을 예정이다.


사람도 식물의 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되살아나려는 의지 그리고 믿음.

오늘은 나도 누군가에게 내 뿌리를 가만히 뻗는다.

한 모금의 생명수를 얻은 나는 어제보다 조금 싱그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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