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75일 차] 알랭 드 보통 인생 학교
여행할 장소에 대한 현명한 선택을 내리기 위해서는 세상 밖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안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 삶에 비어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은 어디인지를 말이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이 지구의 어느 곳에 나를 도와줄 힘을 지닌 장소가 있는지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곳은 자연일 수도 혹은 도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열대 지방이거나 빙하가 가득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_ [나를 채우는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기획, 인생 학교 지음
나는 몸으로 떠나는 여행보다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즐긴다.
내 마음 안에는 나만의 작은 여행지도가 하나 있다. 이 지도는 세계지도도 아니고 지구본도 아니다. 아주 조그마한 메모지에 그려진 지도다.
마치 퍼즐조각처럼 내 마음 상자 안에 무심히 담겨있는 나만의 여행지도.
누군가의 이야기들 듣다가 문득 어떤 사실이나 감정이 궁금해지면 나는 마음속 지도에 작은 길 하나를 그린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내가 도착한 곳이 처음의 생각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그곳은 나 혼자 떠날 여행지이기에 기대와 다르다 해서 실망하거나 도중에 길을 잃더라도 뭐라고 탓할 사람이 없다. 오히려 잃어버린 길에서 낯설고 신기한, 엉뚱한 나만의 모험이 시작될 수도 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안에서 길을 헤매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혹은 전혀 다른 답을 찾고 싶은걸 수도 있다. 이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나로 시작해서 또 다른 내가 되는 순간들이 아닐까.
익숙한 듯 낯선 풍경, 새로운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 예기치 못한 사건, 또는 아무 일도 없는 침묵, 외로움, 고독 속에서 홀로 걷고 뛰고 쓰러지는 나는 자유 여행가.
배낭도 여권도 없이 떠나는 여행. 일을 하다가 문득,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훌쩍,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여행길에 오른다. 사실 나는 여행자라기보다 상상 속의 오지를 휘젓고 다니는 탐험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수풀 속에 가려진 나의 생각들을 채집하고, 굳게 닫힌 문틈에 끼어있는 상상의 옷자락을 움켜쥔 채 그 끝을 따라가 결국 나만의 신대륙을 찾는 모험가. 나는 내 안의 나를 수시로 탐험하고 싶은 내면여행자. 굳이 여권을 갱신할 필요도 따로 휴가를 낼 필요도 없는 자유여행자. 우주 저 멀리에서 한가닥 먼지로 떠돌다 이곳에 정착한 지구별 여행자.
나를 찾아가는 여행은 마지막 눈감는 그 순간까지 쉼 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만의 세계로 떠날 이유와 마음속 지도에서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흥미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사실 비밀 하나를 말하자면 나는 매 순간 혼자만의 여행을 불쑥 떠나고, 이 글 또한 그 여행 기록 중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