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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우리는 다시 존 케이서를 말하는가

Barbara에서 Valerie까지, 어디서 본 듯한 그 시선

by 꽃보다 예쁜 여자


Lost in Translation과 함께 읽는 회화의 시선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은 시작 후 40초 동안 아무 대사도 없다. 카메라는 한 여성의 엉덩이, 허벅지, 허리만을 파스텔빛 조명 아래 비춘다. 화면은 하나의 정지된 표면처럼 보인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오프닝 장면



많은 영화 비평가들은 이 장면을 존 케이서(John Kacere 1920–1999)의 회화에 대한 시각적 오마주라고 말한다. 인물의 얼굴을 지우고 여성 신체의 중간 부위를 확대하는 존 케이서의 시선과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프레임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John Kacere Erika 1993 Oil on canvas Painting:36 × 521/8 x 11/4inch



존 케이서는 1960~90년대 포토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다. 사진처럼 보일 만큼 세밀한 묘사를 위해 얇은 유화층을 여러 번 쌓아 실크와 피부의 질감을 재현했다. Salon 94 갤러리에서 12월 20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 <바바라에서 발레리까지(From Barbara to Valerie)>는 이러한 존 케이서의 독특한 시선 구조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자리였다.


Salon 94 계단, 흐르는 시간에서 멈춘 시간으로


Salon 94의 1·2층은 우르스 피셔의 전시로 가득 차 있었다. 우르스 피셔는 사라지고 변하는 재료를 통해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드러내는 작가다. 조각은 녹아내리고, 형태는 바뀌며, 변화의 과정 전체가 하나의 의미가 된다.



좌: Urs Fischer Merciless Mercy,(2010) 우: Lovelock (2024)


우르스 피셔의 전시 <Shucks & Aww>를 보고 계단을 올라 3층으로 향하면, Salon 94의 계단은 전시의 성격을 바꾸는 짧지만 강한 전환점이 된다.



좌: Urs Fischer Untitled (Standing),(2010) Paraffin wax mixture,



이 건물은 1913~1915년 오그던 코드먼이 설계한 보자르 양식의 타운하우스이고, 2021년 Rafael Viñoly Architects가 갤러리로 리노베이션 했다. 계단, 마호가니 패널, 돌바닥 같은 주요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위에 현대적 조명과 동선이 더해졌다.





Salon 94 계단은 이 건물의 역사를 한 번에 보여주는 핵심 공간이다. Salon 94의 계단은 가운데가 비어 있는 타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중심을 따라 한 줄기 조명이 길게 떨어진다. 2021년 리노베이션 당시, 디자이너 필리프 말루앵이(Philippe Malouin)이 설치한 슈트 샹들리에(Chute Chandelier)로, 여러 개의 원통형 조명이 체인에 연결된 채 계단 전체를 수직으로 가로지른다.





1층에서 올려다보면 머리 위로 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고, 위층에서 내려다보면 바닥까지 이어지는 가느다란 빛의 기둥인 오벌형 라이트웰(light well)이 펼쳐진다.


1층의 대리석 인레이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계단의 타원 구조와 겹쳐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어, 오래된 건축 요소와 현대적 조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래층에서는 돌과 철제 난간의 고전적 분위기가 두드러지고, 위층으로 갈수록 벽과 전시는 더 현대적으로 변한다.





존 케이서의 시간이 시작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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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예쁜 여자가 되고 싶어 꽃을 만드는 공예가입니다. 물론, 외면이 아닌 내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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