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그라피, 아이야 스튜디오 대표
제 이름은 이승기입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사진을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적 교회 수련회를 가서 사진을 찍어오면, 부모님은 “ 왜 네 사진은 없고 다른 사람들의 사진만 가득하냐?” 하며 웃으셨습니다. 거의 몇 천장을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진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전 2001년쯤일겁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저는 당시 스타벅스를 보고는 카페가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모시고 스타벅스에 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를 처음보셨고, 이곳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고 “여기는 인테리어 비용도 별로 안들이고 돈 많이 버네?” 하셨습니다. 사실 알고보니 정말 비싼 인테리어였지만요. 그렇지만 저와 아버지 눈에는 그렇게 보이셨던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인테리어가 이렇게 많이 비용이 들어갈지는 몰랐습니다. 근데 또 안타깝게도 스타벅스는 가맹을 하지 않고 모두 직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타벅스 카페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생각해 낸 사업인 스튜디오가 그래서 카페와 스튜디오를 결합한 모델이였습니다. 대박날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선도적인 모델이었는지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망했습니다. 저는 빠르게 이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카페를 빼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 가자! 그리고 스튜디오 사진관 중에서도 더 뾰족하게 베이비 스튜디오로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저는 베이비 스튜디오를 보면 촌스러운 배경에서 아기 사진 찍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야외에서 찍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대신 왕자 공주 스타일이 아닌 캐쥬얼로 입혔습니다. 저는 안성에 있는 중앙대에서 촬영을 했고, 이런 컨셉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홍보를 하자 서울에서 예약이 쏟아졌습니다. 서울에서 안성까지 내려오는 엄마들이 줄을 섰습니다. 서울에서 오는 고객이 너무 많다보니, 그럼 주1회는 서울에 있는 도산공원에서 찍어주겠다고 스케쥴을 넣었습니다. 그때 가격이 55만원었습니다. 엄마들이 먼저 와서 돗자리 깔고 저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비오면 못찍고 눈오면 못찍는 점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마당이 있고 자연광이 있는 가정집을 섭외해서 렌탈을 했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야외에서 촬영한 느낌의 스튜디오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
결과는 어땠을까요? 완전 대박이었습니다.
초창기 때는 정말 말도 안되게 베이비 스튜디오가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매장도 열었는데 하루에 1,000만원을 넘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 당시에 일년에 순수익으로 10억정도를 벌었다고 하면 믿겨지시나요?
5만원짜리가 당시에는 없어서, 수표로 받을때가 많았고, 이서할수있는 도장을 파서 찍어서 찍었습니다. 당시 제가 운영하던 역삼동 월세가 700만원이었고 직원이 6명 한달 유지비가 1500-2000만원 이었으니 이렇게 지출을 하고도 생각지도 못하게 돈을 많이 벌게되었던 재미있던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연예인들도 많이 왔고 기업가분들도 많이 왔었습니다. 김성주 아나운서 아이들도 둘다 왔었고, 박상민 가수분 딸이 아이돌로 데뷔한것 같은 데, 그 딸을 제가 찍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월드컵 때는 유명한 축구 선수, 농구 선수, 가수들도 많이 왔습니다. 다만 협찬이 아니고 다 돈을 지불하고 내셨던 손님이라서 제가 홍보하는데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럴필요를 못느꼈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저는 연예인을 봐도 잘 모릅니다. 당시 일하느라 TV를 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고급화 전략을 썼고 고가 가격 정책을 썼습니다. 아이들 성장 앨범이 2-300만원 객단가가 나왔었습니다.
이 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제가 좋아하는 사진일을 시작하게 되고난 후, 누군가는 직업을 몇 번이나 바꾸고, 또 누군가는 안정적인 길을 찾아 다른 업종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지만, 저는 지난 25년 동안 오직 사진만을 해왔습니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면 진작에 다른 길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사진을 계속 붙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사진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인생과 감정을 기록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사진 한 장은 그저 종이에 인화된 결과물이 아닙니다. 어떤 이에게는 취업의 문을 열어주는 첫 단추이고,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저는 현장에서 그런 장면들을 수없이 지켜봤습니다. 가족사진을 찍고 나서 눈시울이 붉어진 어머니, 프로필 사진을 찍은 뒤 당당한 얼굴로 돌아가는 청년, 환갑 기념사진을 찍으며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노부부… 이 모든 순간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 제가 사진을 선택한 이유이자, 지금도 사진을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수익도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말하던 시기에도 저는 버틸 수 있었습니다. 금융위기, 메릇, 코로나19 같은 큰 파도 속에서도 사진은 늘 사람들에게 필요했습니다. 증명사진, 여권사진 같은 필수 수요는 경기와 상관없이 꾸준했고, 가족과 기념일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불황에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을 때도, 저는 묵묵히 제 사진관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진관은 재료비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장사가 잘되면 인건비를 쓰면되고, 어려우면 제가 혼자 하면 되서 인건비도 안듭니다. 어려운 시기에 버틸수있는 중요한 점입니다.
또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 장의 사진이 누군가의 평생을 지탱할 수도 있다.” 이 일은 사람의 삶과 함께 가는 업이면서, 동시에 사장님 자신의 삶을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업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가 25년 동안 사진을 놓지 않고,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하며, 또 후배 창업자들에게 사진관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사진관 창업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라는 타이틀로 불리며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장사꾼이 아니라 작가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제가 25년간의 업계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된 메시지입니다.
앞으로 이 책을 통해 제가 겪었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다시 일어선 과정을 솔직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저보다 조금 더 지혜롭게, 그리고 더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언론 인터뷰 내용
http://www.photojournal.co.kr/mobile/bbs/board.php?bo_table=repo&wr_id=485&page=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