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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written text Aug 14. 2024

혼자만의 방 01

1.

어느 한 시절, 평일 저녁 시간과 밤 시간은 그러했다. 야근과 철야 아니면 블루먼데이라는 술집에서 시간 보내기. 철야가 아니라 자정 무렵이라도 일이 끝날라치면 어김없이 블루먼데이를 찾았다.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동갑내기 사장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다음날 출근하려면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야 했지만, 블루먼데이 친구가 늘 조금 더 있다 가라며 나를 잡았다.

“오늘 가야 내일 또 오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철 지난 한산한 해변 유원지와도 같은 블루먼데이의 분위기에 내 발목에는 기분 좋은 그러나 묵직한 취기의 족쇄가 채워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대가는 늘 출근 시간에 치르곤 했다. 단조로운 독신 생활이었다. 일이야 그다지 단조로운 성질의 것은 아니었지만.


2.

언제나 일이 많았다. 연말 크리스마스 때도 쉬지 못하고 일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도대체 연말에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는 이 수많은 이들은 누구일까? 평일 6시 퇴근 무렵, 지하철에 한껏 들어차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 무리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직업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밤새워 원고를 쓰거나 제안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매일 같이 빼곡하게 주어졌다.

글쓰기라는 보잘것없는 재능을 매달 생활비에 해당하는 현금으로 환금하기에 내가 택한 직업만 한 건 없었다.


3.  

일이 없는 주말에는 대체로 집에서 보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방 한 칸에 화장실 겸 욕실, 세탁실이 딸린 원룸에 불과했다. 대체로 마음에 드는 방이었다. 인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원룸 건물이라고 하는데, 외관이든 내부이든 꽤 낡아 있었다. 그 방에서 십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 삼십 대 초반부터 사십 대 중반 시절을 보낸 것이다.


4.

이전의 방들도 좋았지만 이 방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저 화장실이 공용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었다. 내 몸에 딱 맞는 관짝이었고 아늑한 동굴이었으며 오래되고 낡아 편안한 옷이었다.


5.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만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어릴 적에는 다섯 식구가 한 칸짜리 작은 방에서 뒤엉켜 지냈다. 누나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 역시 초등학교 3, 4학년이 되어서야 우리 집은 방 두 칸짜리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부모님이 작은 방을 쓰시고, 누나들과는 좀 더 큰 방을 같이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나들이야말로 참으로 불편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때 그런 생활은 그저 주어지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어서 나로서는 큰 불편이 없었던 것도 같다.


6.

그때는 모든 걸 항상 누군가와 공유해야 했다. 화장실과 수도도 우리 집 것이 아니었다. 주인집을 비롯하여 많게는 네 다섯 집이나 되는 셋집들이 수도 하나와 화장실 한 두 개를 같이 사용했다.

수돗가에는 사시사철 언제나 빨래 대야가 줄 서 있었고 아침 시간 화장실 앞에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7.

고등학교 때 살던 전셋집의 수돗가는 제법 마음에 들었는데, 그곳에 윤기 나는 잎사귀가 가득한 키 작은 사철나무가 있었다. 햇살이라도 좋은 날에는 눈이 부셨다.


8.

가장 좋았던 셋집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살았던 집이다. 커다란 노란 대문을 열면, 아래로 너른 경사로 이어진 제법 큰 마당을 둘러싼 집들이 있었다. 모두 전세 집이었다. 젊은 주인집 부부도 친절했고 이웃들도 좋았다.

가장 좋았던 점은 주인집 아이들이 나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가 아니란 점이었다. 주인집 아들은 어떻게든 셋집 아들을 주먹으로 이기곤 했으니까.


9.

바로 옆집에 까까머리 중학생 형이 있었다. 형은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목욕탕을 같이 다니기도 했고, 형네 집에 있는 미스터리 전집을 보여주기도 했다. 흑마술이니 외계인이니 하는 별 기괴한 이야기가 다 있었다. 그러나 진짜 미스터리는 따로 있었다.

어째서 이 기괴한 책들이 이 가난한 동네, 비좁아터진 전셋집에, 그것도 언제 돌아가셔도 모를 할아버지를 모신 방 한 구석에 있었는가라고 하는 미스터리가 바로 그것이다.


10.

이웃집 중학생 형은 사생아였다. 형의 아버지는 고속버스 운전기사였다. 인물 좋고 인상이 온화한 중년 아저씨였는데, 그가 어디선가 낳아 데려온 아들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형은 의붓어머니로부터 매를 맞았다. 매를 맞은 형은 늘 집밖으로 쫓겨 나와 울고 있었다. 착한 형이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에게는 참으로 탐탁잖은 존재였겠지. 그 형은 지금 어디서 늙어가고 있을까?


11.

고등학교 시절 살던 전셋집은 3년이란 제법 긴 세월을 정주했지만, 그 이전 집들은 모두 일 년을 살고 집안 사정에 따라 같은 동네로 이사 다녀야 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마술사의 모자만큼이나 신기했던 건 이사 때마다 그 좁아터진 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살림살이들이었다.


12.

그래서 내가 ‘혼자만의 방’을 갖게 되었을 때, 집주인이 쫓아내거나 웬만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지긋지긋한 이사는 안 할 생각이었다. 살림도 참으로 단출했다. 어머니가 사주신 두 벌짜리 코렐 식기를 제외하곤 대부분 중고이거나 싸구려였고, 언제든 모두 버리고 옷가지만 챙겨서 떠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하나 예외가 있었는데 바로 책들이었다.


13.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하숙집에서 지냈는데, 독방은 비쌌다. 그래서 둘이 한 방을 쓰는 식으로 살았다. 군대 제대 후 복학해서 1학기까지 그런 하숙집에서 지냈는데, 2학기가 되자 나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 살 수 있는 반지하 자취방을 구했다. 어머니의 반대는 내가 섭생을 게을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그 후부터, 늦은 결혼 이전까지 나는 내가 혼자 살던 방들을 하나 같이 사랑했고, 그 안에서 조촐한 살림들과 친구가 되었다.


14.

내 생애 첫 '혼자만의 방'은 반지하에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창문 밖에는 어두운 복도가 있어서 사실상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었다.

여름에는 너무 습해 이불이 축축했고, 겨울에는 너무 건조해 코 안이 메말랐다. 아침이 와도 어두컴컴했으니 그러잖아도 뒤늦은 사춘기에 접어들어 학교 수업에 불성실해지고 있던 나를 더욱 안 좋은 쪽으로 격려했다.


15.

그 시절은 A선배를 알기 전이라서, 더욱이 나는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몇몇 친구들이 간혹 수업에 빠지곤 하는 내가 궁금했는지 찾아오곤 했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 때로는 소주를 나눠 마시며 기형도 시를 읽어주기도 했다. 그의 가난한 시 중 특히 좋아했던 시가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였다. 어쩐 일인지 그런 것들로만으로도 방문자들은 흡족해하며 내 방을 떠나갔다.


16.

그렇다. 그 침침하고 검은 방에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 4집 음반을 즐겨 듣곤 했다. <옅은 푸른 눈Pale Blue Eyes>라는 노래가 제일 유명하지만, 나머지 노래들도 좋다. 그들의 음악은 내가 그 검은 방에서 피우는 작고 따뜻한 모닥불이었다. 지금도 벨벳 언더그라운드 4집 음반을 들으면, 그 잿빛 시절과 검은 방이 떠오른다. 작고 따뜻한 모닥불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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