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 리그가 아니어도 만족해
미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지금 이때가 대부분 early application을 마무리 하고 regular를 준비할 때다. regular를 끝내면 자유가 찾아오려나 싶지만, early 결과가 하나둘씩 나오며 어떤 학교를 선택 해야할까 하는 더 잔인한 스트레스를 맞게 될 것이다.
나의 high school senior year을 되돌아보면, 장학금을 노리기 위해 대부분 safety로 지원 하였으나 끝자락에는 후회를 참 많이 했다.
'조금 더 높은 학교도 써볼걸'
'정말 갈 곳이 이것 뿐일까?'
안정권을 지원한 덕에 23개 학교 중 3개(2개 waitlist)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오퍼를 받았지만, 막상 내 욕구를 충족하는 학교는 없었다. 당연히 랭킹은 더 높지만, 학비는 낮은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현실과 타협을 어느정도 본 후 약 랭킹 50위권 내에 있는 한 주립 대학교에 decision을 제출하였다. 장학금을 포함 해도 부모님과 상의한 예산의 2배가 넘는 값이었지만 1-2년 내에 장학금을 조금 더 받으리라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나름 뿌듯한 마음으로 입시를 마무리 한 나는 졸업 전까지 열심히 놀다 한국에 들어갔다.
졸업 후, 2025년의 여름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입학 전까지 '백수'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나는 조금의 죄송한 마음을 담아 약 3개월 동안 과외, 알바 2개를 넘나들며 목돈을 버는데에 열중했다. 그때 현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의 학비를 내기 위해 얼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지.
그리고 7월 중순, 나는 decision을 바꾸게 된다. 우리 부모님은 어렸을 적부터 나는 부모와 분리 된 별개의 인격체라는 인식을 찬찬히 가스라이팅 하였고 이 덕에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는 곧 경제적 독립 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6 figures 에 달하는 총 4년간의 학비를 졸업 후에도 갚아내기 힘들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것이다.
그리하여 약 1/4 값에 해당하는 한 주립대에 decision을 바꾸고 싶다는 이메일을 넣는다. 그로부터 매일 internaiontal advisor과 매일 화상 미팅을 가졌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다. Visa transfer, housing application, registration 등.
결론적으로 이 결정을 후회 하냐고 물으신다면,
생각보다 '돈'이라는 것은 인생의 많은 것을 좌지우지 한다. 그리고 지금의 삶에 아주 만족한다. 학비를 아낀 덕에 누릴 수 있는 것들은 더욱 많아졌고, 새로 결정한 학교에서는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었다.
그리고 이름 들으면 알법한 학교를 다녔던 친구가 해준말이 있다. 본인의 학교는 research 중심이었던지라 취업을 목표로 했던 본인에게 너무 힘들었다고.
즉, 알려진 대학 만이 '좋은' 학교는 아니다. 본인에게 충분한 education 과 opportunity 들을 제공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