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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돌 Nov 08. 2024

영원할 것만 같은 허상과 현실의 끝 사이에서

영화 <원더랜드>

영화 <원더랜드>

감독 김태용

2024. 06. 05

113분




챗GPT에 과제를 물어보고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하는 시대. 그 등장 이전 기존의 인공지능인 갤럭시의 빅스비, 애플의 시리, 네이버의 클로바. 이렇게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곁에 무형의 형태로 존재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사랑하는 이가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 <원더랜드>는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해 서비스하는 세상을 그린다.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서비스를 사용하는 ‘바이리’(탕웨이 분), 사고로 누워있는 남자친구 ‘태주’(박보검 분)를 우주인으로 복원한 ‘정인’(수지 분). 그들은 죽음(영원한 잠)이 두렵고, 남겨진 아이와 내가 불안하다. 불안함은 이렇게 실재하지 않는 세계에 손을 뻗게 하고, 그것이 진짜라고 믿고 싶게 만든다.

고고학자가 된 ‘바이리’는 발굴 현장을 다니며 딸에게 생명의 나무를 발굴하면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 거짓된 희망에 할머니는 오히려 그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결국 서비스 이용을 멈춘다. 내가 낳고 기른 딸과 인공지능으로 만든 ‘바이리’는 같은 얼굴과 목소리를 가졌지만 결코 같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이성과 감정의 소용돌이로 마구 뱉어낸 말은 ‘바이리’의 세계에도 거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곳은 어디며, 나는 누구인가. 이 세계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존재하는가.

우주인인 ‘태주’는 다소 시리 같다. 약이 어디에 있는지 지하철 시간에 맞추려면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 알고,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불러주며, 다른 사람하고 영화를 보고 온다고 하면 잘 다녀오라고 한다. 그 다정한 목소리와 화면 속 얼굴의 주인공은 ‘태주’이지만, 그 대화는 어쩐지 나의 취향 분석이 끝난 시리 같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하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핸드폰처럼. 그러나 실재 태주는 당연하게도 그러지 못한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기적처럼 깨어난 ‘태주’는 사람이다. 생각과 감정이 있으며 ‘정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고 밤새 돌아다니고,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이들을 집에 초대해 파티를 열고, 몸이 아픈데 선배에게 찾아가 일자리를 물어보느라 집에 없다. 그런 ‘정인’이 찾게 되는 건 다시 원더랜드 속 ‘태주’이다.

원더랜드의 ‘태주’는 의식불명 상태가 되기 전 ‘태주’와의 추억을 다 가지고 있지만, 이제 깨어난 ‘태주’에겐 원더랜드 ‘태주’와의 기억이 없다. 스튜어디스였던 ‘태주’는 우주에 가본 적도 없다. ‘정인’은 실재하는 ‘태주’와 만들어진 ‘태주’,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태주’들이 한데 뒤섞여 혼란스럽다. 조화란, 생화처럼 물을 줄 필요도 없고 무엇이 필요한지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사시사철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남을 대체품일 뿐이다. 반면 생화는 살아 숨 쉬고, 무엇이 필요한지 갈구할 줄 안다. 혼란스러움에 회피하는 ‘정인’에게 계속 부딪히고 물어보는 ‘태주’처럼 말이다.


영화의 초입에는 마치 지구의 모습을 한 원더랜드 세계가 나온다. 그곳에서 그들은 남겨진 이들이 사준 옷을 입고 차를 타고 연극을 올리거나, 유물을 발굴하고, 보내준 쿠폰으로 음식을 사 먹고, 우주선에서 지구를 구경한다. 하지만 그곳을 스스로 갈 수 없고,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삶의 유지되거나 사라진다. 불완전한 우리는 그런 불안정한 세계를 스스로 만들고 믿으며 웃고 운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가 그곳에 어쩌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존재해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까. 로봇이 애쓰는 모습에도 연민을 느끼고, 인공지능과의 대화에도 위로를 얻는 인간이 이 ‘원더랜드’ 서비스를 정말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무엇이든 그것이야말로, 인간만이 상상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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