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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현 Jan 09. 2024

[게임 리뷰]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아름자운 자연을 자유로이 누비는 환상적인 경험

  이 리뷰에서는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면밀히 분석하여 본 게임의 거시적 흐름과 세부적 요소에 대해 상술하였습니다.


  월드와 게임플레이

  <야생의 숨결>에서의 경험은 이제까지의 어떤 게임과도 달랐다. 월드와 게임플레이가 이토록 완벽히 어우러지는 게임은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다. 대단히 공들여 설계된 월드와 이에 최적화된 게임플레이가 <야생의 숨결>의 가장 큰 차별화 요소가 될 것이다.

  월드를 먼저 살펴보자. 실제 교토 시의 크기와 유사할 정도로 상당히 크고, 지형은 들쑥날쑥하다. 즉 플레이어의 현재 위치, 가고 싶은 위치에 따른 수많은 ‘경로’가 생겨난다. 내 목적지가 지금에 비해 높은지, 낮은지, 가까운지, 먼지에 따라 플레이어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법은 달라진다. 이러한 지형이 넓은 월드에 촘촘히 배치되어 있기에 이로부터 수많은 경험의 바리에이션이 탄생한다.

  <야생의 숨결>은 이러한 월드에 최적화된 게임플레이를 보여 준다. 종래의 게임들과는 달리, 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는 ‘전투’보단 ‘탐험’이다. 탐험의 두 특징적인 방식은 등반과 패러세일로 나타난다. <야생의 숨결>에서는 수직으로 서 있는 구조물이라도 등반을 통해 그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자유낙하하는 대신 패러세일을 통해 천천히 글라이딩할 수 있다. 두 요소는 플레이어의 목적지로 이동하는 ‘수단’인 동시에 ‘제한’이기도 하다. 등반은 작은 나무부터 큰 절벽까지 대부분의 구조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지만, 현재 스태미나 최대치에 의해 등반할 수 있는 높이가 좌우된다. 높은 고지대에 올라가려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을 차례차례 거치며 스태미나 관리를 해 주어야 한다. 한편 패러세일은 속도가 빠르고 고도 유지에 무척 용이하지만, 그럼에도 플레이어의 고도는 점점 떨어지게 된다.

  이제 월드와 게임플레이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살펴보자. 플레이어는 시야 확보에도 용이하고 저지대로 글라이딩도 가능한 고지대를 자주 목표로 하게 된다. 고지대에 올라가고 싶지만 스태미나 제한이 있기에 지금보다 조금 높은 곳을 정하고, 등반을 통해 오르고, 스태미나를 채우고. 이 과정을 반복하여 원하던 곳에 도달한다. 그 후엔 탁 트인 시야로 여러 가지 구조물들을 관찰한다. 사원, 탑, 또다른 고지대 등 원하는 목표를 정했다면 글라이딩을 통해 목표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고도는 점차 줄어든다. 크게 보면 오르고, 이점을 취하고, 다시 내려가는 것의 반복인 게임플레이다. 즉 이 게임의 메인 컨텐츠는 이동이다. 이런 단순한 게임플레이가 재미있을까? 놀라 자빠질 정도로 재미있다. 후술할 플레이어의 자유로움과 능동성 때문이다.


  자유와 능동성

  <야생의 숨결>에 대한 평에서 ‘상호작용’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키워드는 ‘높은 자유도’일 것이다. 이러한 자유는 ‘내 눈에 보이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비롯된다. 등반이라는 상호작용 방식 덕분에 게임 속 모든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극대화되었다. 절벽이 앞길을 막고 있다고 다른 게임에서처럼 돌아갈 필요가 없다. 오르면 되니까.

  이렇게 월드 전체와 상호작용이 가능해짐에 따라 플레이어에게 수많은 선택의 가지가 제공된다. 목적지는 하나라도 그에 도달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아지는 것이다. 절벽을 오르거나, 고지대에서 글라이딩을 하거나, 가까운 마구간에서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워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플레이어는 고민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방식 그대로 달성한다. 여기서 오는 성취감은 의무적인 퀘스트를 달성했을 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야생의 숨결>에서의 성취는 어디까지나 플레이어가 직접 원하고, 정하고, 계획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술했듯 플레이어가 목적지를 설정하는 것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 된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닌텐도는 플레이어가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맵 곳곳에 배치했다. 고지대에 올라가면 유용한 워프 존으로 저장되는 사원, 지도를 크게 넓혀 주는 탑, 좋은 아이템을 주는 몬스터 기지를 비롯한 수많은 흥미로운 요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1차적 목적지인 고지대에 올라갈 계획을 세워 정상에 도달하면, 가장 매력적인 2차적 목적지를 설정할 수 있고, 그곳에 도달하는 여러 방법을 생각해 보게 된다. 즉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가 가고 싶은 방법으로 가는 것이 <야생의 숨결>의 정수이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야생의 숨결>을 플레이하는 동안은 정말 탐험하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곳으로, 마음이 내키는 곳으로.

  맵은 그저 존재할 뿐인데, 게임플레이는 그 자체로 완성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높은 곳에서 다시 낮은 곳으로. 목적지에서 설정한 다른 목적지로, 또 새로운 목적지로. 이런 식의 게임플레이를 기획하는 것은 선형적인 게임의 기획보다 훨씬 어렵다. 플레이어가 언제 어디에 있든 항상 흥미를 느끼고 목적으로 삼을 대상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의 숨결>은 이에 완벽히 성공했고, 이런 부분에서 드러나는 게임의 완성도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맵과 게임플레이를 <야생의 숨결>의 메인 콘텐츠, 자유와 능동성이 메인 콘텐츠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라고 한다면 이 게임의 시스템은 플레이어에게 즐겁고 독특한 경험을 주는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유명한 자연법칙 시스템이다. 철제 무기엔 번개가 치고, 번개가 치면 들판에 불이 붙고, 불이 붙으면 상승 기류가 생긴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게임인 만큼 여러 자연법칙들을 가져왔는데, 게임플레이에 딱 알맞은 정도로 변형시켰다. 제목이 야생의 숨결인 만큼, 이 게임은 자연물들과 자유롭게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체공 상태에의 불릿 타임

  전투 시스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중에서 활을 당길 때 <매트릭스>의 유명한 씬처럼 시간이 느려지는 ‘불릿 타임’ 시스템이었다. 여러 긴박한 상황에서 이를 이용하게 되는데, 긴장감도 더해 주고 플레이어의 집중을 한 곳에 끌어모아 몰입감 상승에 크게 기여한다. 그 외의 전투 시스템은 심플하게 만들어졌다. 공격 버튼은 하나로 통일되었으며 모션도 최소화되었다. 더 많은 바리에이션을 바라는 유저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겠으나, 전술했듯 <야생의 숨결>의 메인 콘텐츠는 전투가 아닌 탐험이기에 전투 시스템을 간편화한 것은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전투에 이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무기 시스템을 살펴보자. ‘야생의 숨결’의 무기는 쉽게 부서진다. 즉 내구도가 낮다. 이에 대해 무기 확보가 어려워 불편하다는 쪽과 오히려 부족한 무기가 탐험을 촉진한다는 쪽이 있는데, 필자는 후자에 속한다. 무기의 불안한 수요가 맵에 존재하는 몬스터 무리나 기지 등을 더 매력적인 목적지로 만들기 때문이다.

  온도 시스템은 좋은 제한이다. 춥거나 더운 온도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길이 상술한 자연법칙과 더불어 존재하기에 플레이어가 나름대로 머리를 쓰게 만든다. 가령 추운 지역이라면 추위 저항 음식을 먹거나 모닥불을 피우거나 화속성 무기를 등에 차고 다니거나 횃불을 들고 다니는 등 여러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그래픽과 음향

  <야생의 숨결>의 그래픽은 훌륭하다. 과감한 생략이 특징인 카툰 랜더링은 자칫 뭉뚝하거나 개성 없는 느낌을 줄 우려가 있으나 <야생의 숨결>은 달랐다. 태양으로 대표되는 광원을 잘 활용하여 단색의 풀들도 눈부시게 빛났고, 강이나 바다도 항상 빛을 담고 있었다. 비나 눈이 오는 등의 날씨에 대한 표현도 깔끔한 편이다. 평소엔 눈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가끔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었다.

 <야생의 숨결>을 플레이한 유저라면 이 게임이 배경음악을 최소화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릴 때,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건 말발굽이 풀을 밟는 경쾌한 소리와 바람 소리, 작은 백그라운드 음악뿐이다. 산을 타거나 설원을 탐험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게임의 제목처럼 우리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전술한 두 요소는 플레이어가 정말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눈부시게 빛나는 들판을 지저귀는 새들과 재채기를 하는 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가로지르는 것은 멋진 경험이었고, 인위적인 것이 가능한 한 배제된 자연 그 자체를 담고 싶었던 개발진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총평

  경험했던 어떤 게임보다 좋았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계획과 실행을 통해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야생의 숨결>에서만 할 있는 독특한 경험이었고, 플레이어에게 대다수의 선택을 맡긴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정도의 자유도가 주어진 롤플레잉 게임은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은 빠르게 적응했고, 재미있게 즐겼다. 그만큼 기획 과정에서의 닌텐도의 세심한 계획과 배려가 느껴지는 게임이었다.

   닌텐도는 적절한 탐험 도구와 맵을 통해 플레이어의 호기심과 동기를 효과적으로 끌어냈다. 이 게임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수록 닌텐도가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주의를 끌고, 자신도 모르게 게임의 기획에 끌려가게 만드는 데에 정말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야생의 숨결>은 자유로운 게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플레이어가 개발자가 원하는 그대로 움직이게 되는 게임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 있어도 항상 플레이어가 가고 싶은 곳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선형적 구성과는 그 깊이가 차원이 다르다. 결국 닌텐도는 세상을 하나 창조한 셈이고, <야생의 숨결>은 링크도, 젤다, 가논도 아닌 하이랄과 하는 게임인 것 같다.

  결국 이 게임은 닌텐도의 긴 암흑기를 끝낸 게임이 되었다. 또한 역대 최고의 론칭 타이틀 중 하나이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을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게임이며, 최근 젤다 작품들 중 가장 젤다스러운 게임이기도 하다. 젤다 시리즈의 창시자 미야모토 시게루가 추구했던 자유로움이 이 게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스토리가 그저 무난하다는 점, 가논의 낮은 비중으로 인해 마지막 보스전의 의미가 축소되었다는 점과  이 게임을 이 정도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필자의 필력이 있겠다. 정말 위대한 성취를 해낸 닌텐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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