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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로 똑똑

그저 맞이하면 그뿐인 것을

by 그리여

뿌연 성애가 창문에 붙어있는 서늘한 날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

망설이다 살짝 열었다


긴 시간 동안 조금씩 밀쳐 들어오는

형체 없는 아련한 그의 앞에 선다

충분히 준비하고

오랜 시간 아렸기에

그의 앞에 당당하고 싶다


예고 없이 불쑥 오고

눈 녹는 봄이 오기 전에 샤르륵 멀어진다

또 오리란 걸 알기에

찬바람이 옷깃에 주렁주렁 매달리던 날

애써 웃으며

어서 와, 그에게 팔을 활짝 펼쳤다


이제는 왠지 안을 수 있을 것 같다

충분히 울어

충분히 웃어

그렇게,

잠잠해진 마음


햇살이 눈부신 날도

바람이 차가운 날도

소나기 쏟아진 날도

집안에 온통

된장찌개 냄새가 구수한 날에도


그를 위해 열어둔 마음의 창

추억이란 테이블 위에

애잔하게 너울거리는 촛불을 켜고

따스한 차 한잔을 준비한다


쪼그라진 마음속에

깊이 구겨둔 일기장을 펼쳐본다

더 이상 그는 슬픔이 아니다

기쁨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그저 숨 쉬듯, 맞이하면 그뿐인 것이었다


따스한 찻잔을 감싸 쥐고 편안히 마주 앉은

그의 이름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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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늦가을, 누군가가 그리운 날에 가을앓이를 한다



#시답잖은 #감성 #시

#그리움

#감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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