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에 많은 사람들이 하는 긴 일정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큰 일을 해낸 것도 아니다. 그랬다면 아픈 발을 치료하러 이틀에 한 번씩 한의원에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긴 여행이나 큰 일 대신, 직장에 다니는 동안 생략하거나 압축적으로 해냈던 집안 살림을 더 꼼꼼하게 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동네에 머물며 도서관과 카페와 골목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며 하루를 시작해 일기를 쓰며 잠이 드는 일상을 반복했고, 매일 집 밖에 나가는 건 출퇴근할 때와 마찬가지였지만 폭우나 폭설이 쏟아진 날은 굳이 아침부터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새 소식이나 라이브를 놓치지 않고 실시간으로 즐기는 덕질을 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소는 일부러 평일에 찾았는데, 이건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들을 나름 배려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난이도에 비해 과하게 열심히 공부해서 민간자격증 두 개를 땄고, 부모님 댁을 찾는 횟수는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면, 내 멘탈이 강한 이유는 내가 잘 울어서 ‘해소’를 잘하기 때문이라는 걸 친구가 알려주었다.
생각보다 불안하지 않았다. 평온한 마음으로 보낸 1년이었다. 그건 나쁘지 않은 체력과, 일하면서 알뜰하게 모아놓은 통장의 잔고 때문일 것이다. 내일부터 통장을 더 채우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하고, 주변을 살피면서도 무엇보다 본업에 충실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오늘을 자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