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개나리 돌담길에서

by 차태주

2년 뒤, 우리가 중학생이 되면서 지혜는 그동안 크지 않았던 키가 한꺼번에 큰다. 매번 날 올려다보던 녀석은 어느새 나를 조금 내려다볼 정도로 커지고, 뚱뚱하던 몸매는 길어진 키에 반비례하듯 날씬해져, 숨겨져 있던 미모가 드러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젖살이 아직 빠지지 않은 지혜는 정말 귀엽고 이뻤다. 살에 가려져 좌우로 가늘게만 보였던 눈은 크고 둥근 눈망울로 또렷이 빛났고, 가려져 있던 턱선이 선명해져 갸름하고 고운 모양을 이뤘다. 무엇보다 지혜가 웃을 때 그 포근한 눈빛은 보는 이에게 왠지 안심되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지혜는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했다. 사실 녀석은 공부보다는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주로 만화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처음에는 서투르게 따라만 그렸지만 나중에는 혼자서도 꽤 잘 그리게 된다. 하지만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던 지혜의 집은 그림 공부를 시켜줄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녀석은 애니메이터 쪽으로 진로를 잡지 않고, 열심히 나를 따라다니며 학교 공부를 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 일에 대해서 나는 끝끝내 지혜에게 사과하지 못했다. 참 바보 같았지, 그게 뭐 어렵다고. 하지만 지능만 높았지 속내는 12살짜리밖에 안 됐던 내게, 누군가에게 사과하기 전의 그 어색하고 불안한 감정은 정말 낯설고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지혜는 수없이 감사하고 또 사과했건만.

“너 왜 자꾸 밥 안 먹는다 그래? 나 때문에 그래?”

날카롭고 싸늘한 말투에 지혜가 움찔 떨었다.

“내가 밥을 먹든 안 먹든 상관 말라고 했지! 넌 네 일이나 신경 써! 왜 내 일에 네가 나서서 그래!”

내 앞에서 고개 숙이고 움츠려있던 지혜의 얼굴이 빨개지더니 이윽고 그 가는 눈매에서 물기가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더 화가 났다.

“너 혹시 내가 불쌍하니? 내가 그것밖에 안 돼 보여!”

“야! 이 못된 가시나야! 고만 안 하나!”

옆에서 영미가 매섭게 쏘았다.

“다 니가 걱정되가 그란 기다 아이가! 니는 마음도 없나!”

나도 영미를 쏘아 보았다.

“내가 언제 걱정해 달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주제넘게 참견하지 말란 말이야!”

그러니 영미는 더 큰소리로 악을 썼다.

“니 같은 거 걱정 안 해! 이 지밖에 모르는 싸가지야!”

이윽고 지혜는 작게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가자! 저 못된 가시나랑은 상종도 하지 마라!”

영미는 곧 지혜의 손을 잡아 교실 밖으로 이끌었다.

“지혜한테 거짓말 시킬 때부터 알아봤다, 이 못돼 쳐먹은 가시나야!”

성깔 센 기집애는 교실을 나갈 때까지도 내게 뒤돌아 쏘아붙였다.

반 아이들 모두 급식소로 간 뒤 혼자 남은 교실에서 나는 주먹 쥔 양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지혜나 영미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무언가에 화가 났다. 그게 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시장에서의 그 일이 있은 후 2주가량이 지났다. 2주라는 시간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던 내 몸과 마음을 고단하던 때로 다시 되돌려 놓기에 충분했다. 몸은 점점 야위어 갔고 신경은 날 서 갔다. 저번 주부터는 과외도 안 나가는 중이다.

엄마는 다시 밤마다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예전처럼 방에서 앓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제 엄마가 나를 보살펴주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지혜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견딜 수 없었다. 녀석의 선의가 나를 더 약해 보이게 할까 봐 겁이 났다. 내 나약한 모습을 들키는 건 그 애 하나로도 벅찼으니까. 그러니 야위어 가는 나를 보며 자기도 선뜻 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그 다정하고 여린 기집애를 매정한 말들로 할퀴었던 것이다.

책상에 엎드려 멍하니 있으려니, 얼마 뒤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치는 느낌에 정신이 들었다.

“축구 하러 안 갈 끼가?”

별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같지만 혹시 몰라 물어봤을 영곤이가 옆에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엎드렸다.

이제 그만 물을 때도 됐겠건만 영곤이는 일주일도 넘게 내게 축구하러 가지 않을 거냐고 묻고 있다. 바보 같은 놈.

그날 아침 엄마는 국을 올린 쟁반을 가져오다 아침뉴스의 한 장면을 보고 돌연 주저앉아 버렸다. 국이 쏟아져 바닥을 적셨고 그릇들이 나뒹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비통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북태평양 어딘가에서 고기 잡던 배의 선원이 사고로 바다에 떨어져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욕실에서 세수하고 나오던 나는 엄마의 겁먹은 눈동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통 아빠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다정한 아빠의 얼굴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고, 아빠가 떠나기 전 내 가슴에 박혔던 그 슬픈 눈동자가 응어리처럼 아려왔다. 그러면, 끝끝내 놓쳐버린 아빠의 손목을 한처럼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조금만 더 꽉 잡을걸.

힘을 줘서 잡고 있었어야 했어.

그걸 왜 놔버렸을까, 바보같이.

못 가게 매달렸어야지 이 멍청한 꼬맹아!

“이리 나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선생님이 날 부르고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해 있었고 서늘한 정적이 교실을 휘감았다.

나는 죄인처럼 걸어 나갔다. 책상 사이에 걸려있는 가방들을 피해 발을 디딜 때마다 몸이 힘없이 비척거렸다.

“평소엔 잘하던 아아가 요샌 와 이리 정신을 몬 차리노, 잘 하라꼬 때리는 기다이”

말은 다정한 듯했지만, 선생님의 손바닥은 자비라곤 없이 내 볼에 부딪쳐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나는 비참함도 느끼지 못하고 덤덤히 자리로 돌아왔다.

여태껏 영재 소리 들으며 한 번도 맞아 본 적 없던 나는 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얼굴이 땃땃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선생님의 손바닥과 내 볼이 세게 맞닿으면서 일으킨 마찰열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 보는 데서 뺨을 맞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구나라는 걸 처음 알게 된 어느 나약한 소녀의 수치심 때문이었다.

문득 나를 뒤돌아보는 지혜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더 수치심이 들었다.

날 동정하지 마.

날 우습게 보지 마.

날 불쌍하게 보지 마.

나를 그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지 말란 말이야 이 돼지 같은 기집애야!

딩동댕동!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점심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홀가분한 듯 떠들어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지혜는 선뜻 일어나지도 않고 뒤돌아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나를 뒤돌아보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지혜에게 나는 활짝 웃어 보였다.

“아아, 밥 먹기 귀찮아, 히히, 너희들끼리 먹고 와, 나는 좀 잘게”

그리고는 내게 뭐라 말하려는 지혜를 무시하고 얼른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우리끼리 가자, 야아는 또 밥 안 먹을란 갑다”

어느새 다가온 영미가 지혜를 재촉했다.

반 아이들은 우르르 교실을 나가고 있었다.

“나... 나도 그냥 안 먹을래, 입맛이 없어...”

“니까지 와 카노, 니 어제도 밥 안 먹드만 나중에 배고프다고 난리 지깄다 아이가!”

“아니라, 나 진짜 오늘은 입맛이 없어, 진짜라! 배도 조금 아픈 거 같고... 나도 그냥 교실에 있을래”

지혜의 말을 엿듣던 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지혜를 노려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지혜가 겁먹은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너 왜 자꾸 밥 안 먹는다 그래? 나 때문에 그래?”

날카롭고 쌀쌀한 말투에 그 다정하고 연약한 기집애가 움찔 떨었다.


그날은 혼자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 애를 기다리지 않게 되면서부터는 지혜와 영미가 터미널까지 같이 가 주었었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나를 위하는 줄 알면서도 착한 애를 그렇게나 쏘아댔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날만큼은 정말 혼자서 집에 가긴 싫었다. 그래서 그날은 터미널까지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최대한 천천히 터미널로 가다 보면 혹시라도 그 애가 날 따라잡아 주지 않을까 싶었다. 천천히 가다가 버스를 놓치게 된다면 뒤늦게 온 그 애와 같이 버스를 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4번 승차장 앞 벤치에 다다라 털썩 주저앉았다. 가방을 벗어 앞으로 껴안았다.

그 애는 오지 않았다. 느리게 걷는 날 따라잡아 주지 않았고, 출발 5분 전 버스 시동이 걸릴 때까지도 그 애는 터미널에 도착해주지 않았다.

버스에 시동을 걸어놓고 나오는 기사 아저씨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나는 왠지 그대로 앉아 있고만 싶었다.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온 아저씨가 버스를 타기 전 다시 나를 힐끔 쳐다봤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봤다.

“야야, 인자 출발 할 낀데, 안 탈 끼가?”

운전대에서 출발할 준비하던 아저씨가 문득 창문을 열고 내게 물었다.

나는 잠시 아저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활짝 웃어 보였다.

“아... 친구가 오기로 해서요, 다음 버스 타기 전에 올 거예요, 히히”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새삼 깨달았다. 나는 지금 그 애를 기다리고 있는 거구나.

곧 버스가 출발했다.

나는 다시 멍하니 떠나가는 버스를 바라봤다.

다음 버스가 떠나기 전에는 그 애가 올까. 아니, 만약 현우집에 놀러 간 거라면 꽤 늦게 올지도 모른다. 나는 이대로 막연히 기다릴 수 있을까. 만약 오후 늦게서야 그 애가 버스를 타러 온다면 아직도 터미널에 앉아 있는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혹시 귀찮아할까. 아니면 꺼림칙해 할까.

생각에 빠져있자니, 곧 다음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탈까 말까 하다가 결국 그 버스도 떠나보내고 말았다.

이제는 그냥, 마냥 기다리기로 했다.

그 애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가도 이따금 초조해지기도 했다. 시간이 빨리 가길 바라면서도 느리게 가길 바라기도 했다. 이번 버스가 떠나기 전에 그 애가 오길 바라면서도 그냥 다음 버스에 오길 바라기도 했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봤다. 꽤 높은 벤치에서 바닥에 닿지 않는 발끝이 대롱대롱 흔들렸다.

그때 옆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애써 웃으며 그 인기척을 맞이했다.

“지금 가니?”

그런데 그 애는 왠지 경직된 표정으로 나를 살피더니 곧 내 옆에 앉는 것이다.

우린 한동안 말없이 있었다. 조금은 떨어져 앉을 거라 생각했던 그 애가 왠지 내게 꼭 붙어 앉아서 그 순간 나는 우리가 함께 있다는 느낌이 충분히 들었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나는 이유 모를 변명을 굳이 했다.

“지혜랑 영미랑 놀다가, 방금 왔어...”

그러니 그 애는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안 타나?”

고개 숙인 채 말하는 그 애 모습이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으응, 지금 타려고, 타자!”


오후 몇 시나 됐을까. 그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는 밭에서 일하는 마을 어른들이 꽤 많이 보였다. 이젠 그 모습도 제법 눈에 익었다. 발목까지 오는 새싹을 허리 숙여 돌보던 어른들이 이따금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 때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고개 숙여 인사하면, 챙 넓은 그늘막 모자를 눌러쓴 어른들은 멀리서도 환히 웃으며 손 흔들어 줬다.

버스에서 내리면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집에 왔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이 좋았다. 밭에서 작물이 자라나는 쌉싸름한 냄새도, 이따금 거무잡잡한 퇴비가 뿌려지면 맡게 되는 비릿한 냄새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크게 굽은 길을 돌아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면 곧 돌담 위로 줄지어 피어난 개나리들이 나타났다. 저학년 때 배운 동요나 동시에서나 들어봤던 개나리라는 꽃을 나는 그곳에서 처음 봤다. 수수하고도 예쁘게 피어난 그 꽃의 샛노람은 아늑하고 포근한 나의 마을과 꽤 닮았다. 그래서 나는 개나리꽃 너머 마을이 보이는 그 길 그 풍경이 좋았다.

개나리 돌담 옆을 한창 지나고 있을 때 그 애가 문득 이쪽을 돌아봤다.

“할머니 일 도와드리러 가야 될 거 같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곤 괜히 발끝을 내려다봤다. 곧 그 애는 먼저 달려가겠지. 오늘 마을 어귀까지라도 같이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금은 허전한 느낌이 들 테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애의 인기척이 여전히 곁에 머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의아해 옆을 돌아봤다. 할머니를 도와드리러 간다던 애가 왜인지 가지 않고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이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그 애도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그날 그 길의 풍경을 함께 걸어가던 그 애가 처음으로 내게,

“토요일에 놀러 올래?”

나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퍼뜩 이해되지 않아, 잠시 그 애를 바보처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뜩 알아채고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그러니 그 애는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곧 부리나케 달려가는 것이다.

저만치 달려가는 그 애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그날따라 나의 마을이 조금 더 따듯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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