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현 Oct 02. 2024

이혼한 집, 친조부가 돌아가셨다.

'전역' 아마 군대를 전역한 남성에게는 여러 의미로 느껴질 단어다. 아니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러했다.


전역을 한 후 필자는 취준을 하였고 외국계 반도체회사에 취직했다. 여러 사정이 겹쳐 3개월 만에 퇴사하였고 그 이후 필자는 수원에서 취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뭐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퇴사하고 취준생 생활 중, 두 달 전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다는 전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가족적인 이야기는 제쳐둔다 해도 몇 번의 추석과 이혼 이후 필자는 친가 가족과 연락을 안 하였고 가끔 생일에 아버지란 사람이 연락하는 것으로 연락을 대충해왔다.


어느 날 동생에게 전화가 와하는 말은


 '형 할아버지가 아프시대 내려갈 건데 같이 갈까' 


평시에 대답을 썩 잘하는 형이었지만 그날은 유독 입에서 말이 안 나왔다.

아니 내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대략 10분 정도 고민했을까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였다. '나는 솔직히 가고 싶지 않다.'라는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드렸고 그날 어머니는 나에게 '너도 성인이니 너의 판단을 존중한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 처음으로 그 말을 듣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글쎄 아니 어른이라는 무게를 제대로 체감한 것 같다 해 야하나, 집을 계약하거나 업무를 진행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도 느끼지 못한 선택의 무게감을 여기서 처음으로 느낀 것이다.


대략 30번 넘게 고민을 하다. 한 번도 먼저 걸어본 적 없는 아버지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참 웃긴 겼던 것이 그렇게 싫어한다 입에 달고 살던 아버지면서 나는 아버지의 뒷번호로 비밀번호를 관성적으로 쓰고 있고 아버지의 번호는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능적으로 관성적으로 쓰고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돌이켜본 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고 그를 용서하고 싶었던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자 식이 마지막 인간으로서 정인이 아니면 그저 멍청한 나는 그렇게 당하고도 사람을 믿었던 것인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나는 그에게 말을 했다. '할아버지 이프 시 다매요?'

내가 일을 처리했다 너는 알 필요 없고 내려오기만 해라 할아버지 돌아가 시 전에 와라라는

 

말을 듣자마자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당시 나의 사고의 흐름을 회고하자면


권위주의적? 능력이 있다면 상관없다 소위말하는 586세대라고 불리시는 분들은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을 견디셨고 혼자 집안을 부양하셨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은 집에 한 번도 생활비를 가져온 적도 없이 아버지라는 권위만을 누리던 인간이 나한테 명령을 내린다고?라는 생각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아니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의 가치관이 확고해졌고 아버지처럼 안 살아야겠다,라는 좌우명을 가지게 된 내가 처음으로 그에게 모든 것을 내뱉어본 날이었다.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하냐 아니 그걸 떠나 당신이 아버지로서 그런 말할 자격이 있나 명절에 나랑 동생기분 이해는 하냐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xxx 씨 법적이든 뭐든 저랑 관계없는 분인 거 알고 계시죠? 그냥 여기까지만 합시다, 


그의 말은 한결같았다 네가 아들인데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냐? 

수십 번 들은 말에 혼자서 수백 번 떠올리던 그냥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하던 한마디를 드디어 입에 내뱉을 수 있었다.


"나한테 아들다움을 요구하려면, 당신이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했습니까?"


기억하기로는 10초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그는 화를 내며 "그럼 오지 마 xx세끼야"라는 말로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정말로 끝이 나버렸다.


정말 우스웠다, 아니 그저 하기 싫어서 도망치던 내가 잔으로 부모와의 관계를 끊어 냈다.


 속된 말로 병신이라고 칭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천륜 인본 인간으로 지켜야 할 것에 목매던 나라는 자신, 교육을 가르치던 할머님 말씀 사서삼경 수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저 힘듬에 포기한 것 내려둔 것 그것뿐이었다.


내 안에 남아있던 아버지란 나무는 그저 겁화가 태우든 바람이 불든, 재가 된 상태로 끝까지 버텨주었지만

아주 사소한 바람만으로 흩어져 사라질 것이었다는 점이 너무나도 우스울 뿐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두고 느끼는 해방감과 무력감은 우울했고 왠지 모르게 그날 하늘은 잿빛이었다.

이전 08화 이혼이 끝나고 난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