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군가의 오후 - 빛을 쫓던 누군가의 이야기
책을 읽으며 ‘개츠비가 살아있었다면, 데이지와 결국 이뤄지게 됐다면, 단편의 주인공 중 누구와 닮아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인공들은 대체로 알코올 중독자이고, 준수한 외모에, 젊은 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초록빛을 바라보던 개츠비처럼 그들은 스스로의 허상을 쫓는다. 파티와 유명인,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전의 영광.
차이점이 있다면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높아진 위상이 향락과 투기를 조장하던 개츠비의 시대와는 다른 배경이라는 점이다. 경제대공황의 검은 구름이 지나간 후, 깜박이는 희미한 불빛의 잔상을 향해 뻗은 손길은 어쩐지 더욱 쓸쓸하고 허무하게만 느껴진다. ’ 알코올에 빠져 ‘, ‘피네건의 빚‘, ’ 잃어버린 10년‘은 닉 캐러웨이와 개츠비의 관계처럼 관찰자의 시점을 따라 펼쳐진다. 그러나 관찰되는 인물들은 개츠비에 비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다. 반대로 나머지 글들은 피츠제럴드 자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 너무 생생해 그 숙취에 조금 어지러운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두 작품은 ‘바람 속의 가족’과 ‘어느 작가의 오후’였다. 작품 속에서 생의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람 속의 가족’에서 주인공은 의사 면허가 정지될 만큼 술을 마신다. 자신보다 곱절 어린 여자를 남몰래 좋아하던 그는 여자의 죽음으로 더욱 방황하다 허리케인이라는 재해를 겪고 난 뒤 결국 다시 살아가야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고양이를 안고 살아남은 소녀를 생각하며 술병을 도로 집어넣는 그의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생전에 딸바보로 유명했던 피츠제럴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짧은 단편소설인 ‘어느 작가의 오후’는 성치 않은 몸과 글을 쓸 소재가 고갈된 작가의 오후를 그린다. 그는 신체와 경제적 상황, 과거가 주는 무력감과 좌절을 끊임없이 마주하지만 또 한편으로 버스 창밖을 스치는 나무, 젊은 연인을 보며 끊임없이 한 인간으로서의 생, 한 작가로서 자신의 소명을 확인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오후가 찾아올 때가 있다. 최선을 다해서 쓰던 글이 찢어버릴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최선을 다했던 무언가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릴 때. 더 이상 내 안에 남은 것이 없는 것처럼 막막함이 느껴질 때. 이 한 작가의 오후를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에도 그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 글을 쓰고 싶어 졌던 것이다.
한편, 피츠제럴드라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또 그의 생애를 간추린 글들을 보면서 그의 선택과 인생에 대해서 박수를 보낼 순 없겠지만 그의 솔직함 만은 ‘위대한’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한 시절과, 마음속을 훑듯 다녀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물론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의 유한한 삶을 기반으로, 그 속을 캐내어 솔직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헛된 빛을 쫓아서는 끝내 발견해 낼 수 없었던 무언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