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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유 Feb 24. 2024

둘째는 오늘도 밥상토론을 위한 작은 공을 쏘아 올립니다


금요일 저녁 식탁.


오늘 저녁 메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짝지근한 데리야끼 소스로 양념한 닭고기구이. 여기에 요즘 실하디 실한 아스파라거스와 버섯을 구워 가니쉬로 곁들이면 심플하지만 나름 충실한 저녁식탁 완성 :)


밥 먹을 때는 가능한 TV를 켜지 않자 주의이지만, 감기 기운으로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느라 지루했을 둘째를 위해 막간의 환기 타임으로 TV를 틀어본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보는 BBC 뉴스의 오늘 헤드 뉴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째라는 것...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전쟁 중인 군인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당연히 BBC기자는 철모에 방탄조끼까지 중무장을 하고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


이를 본 둘째 아이가 질문을 한다.


둘째 : "저 기자는 목숨을 각오하고 전쟁 현장에 나가서 기자를 하는 거예요?"


"응" 혹은 "아니야"라고 대답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럴 수 없는 문제이지 않은가. 일단은 둘째에게, 저 기자는 '종군 기자'라는 특정한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임을 먼저 알려줬다. 그러자 둘째는 곧이어 "왜요?"라고 묻는다. 나는 여기서 큰 아이에게 '마이크'를 던진다.


 : "(큰 아이를 보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종군 기자들은 '왜' 목숨을 각오하고 전쟁 현장에 간다고 생각해?"


밥을 먹던 큰 아이는 "갑자기?"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짐짓 나를 한 번, 동생을 한 번 쳐다보더니, 천천히 자기 생각을 이야기한다. (우리 큰 아이의 대화 패턴 ㅎㅎ 전혀 서두르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ㅎ)


첫째 : "이 세상에 여러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전쟁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누군가는 그 현장을 세상에 알려야 하잖아요. 종군 기자들 역시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현장에 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는 이타적인 사람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대화는 이어진다. 나는 그저 지켜보다가 중간중간 추임새만 넣으면 된다.


둘째 : "그럼 저 기자한테 어떤 일이 생기면, 책임은 누가 지는 거야?"(아직 어린 둘째 입장에서는 충분히 궁금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 "00야, 전쟁은, 누가 책임을 지거나 안 지거나, 그렇게 간단하게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도 책임을 안 질 수도 없는 일인 거잖아. 그래서 우리가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야. "


첫째는 생각을 이어서 이야기한다.


첫째 : "저 기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치자. 그런데 누가 저 기자에게 그런 행위를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 그리고 설령 알아낸다고 해도, 그 당사자를 찾아가서 책임지라고 할 수 있어? 전쟁은, 하아.. 이 이야기를 너(둘째)가 이해할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전쟁은 '죽느냐 죽임을 당하느냐'의 문제야. To kill or to be killed라고. 그 기자에게 어떤 행위를 가한 당사자조차도,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그랬는지,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는지, 아니면 스스로를 방어하려다 그런 건지, 우리는 확실히 이야기하기 어려워. 아무도 확인할 수가 없어. 전쟁이 매우 특수한 상황인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야. 우리 영어 시간에 요즘 이런 내용에 대해서 토론 중이거든. 그래서 우리 반도 요즘 이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현재까지 우리가 토론하면서 어디까지 왔냐면, 의견은, '전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모두가 그에 관한 책임에 대해서 벗어나긴 어렵다는 거야. 'Whatever happened, we all did it.'"


으... 아... 대화가 점점 심오해진다. 둘째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첫째가 또 부풀리기 시작한다. (우리 집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내가 중간에 개입(?) 혹은 '해맑고 무지한 엄마 등장!' 모드로 이쯤 되면 대화를 잠시 식혀줘야 한다.


 : "거기서 '우리 we'가 누군데?"


큰 아이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다가 이야기한다. 여기서 더 대화를 이어가면 대화가 너무 길어질 것 같다며. 둘째는 여전히 초롱초롱한 시선 반, 다른 화제로 대화를 돌리고 싶어 하는 눈치 반이다. 

격렬한 토론의 끝을 봐야 하는 디베이트 대회에 나온 것도 아니고, 일단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 둘째는 갑자기 오늘 학교 점심메뉴가 궁금했던 듯 첫째에게 오늘 점심메뉴 어땠는지를 또 갑자기 물어본다 ^^; 귀여운 둘째 ㅎㅎ


출처 : @pixabay


식사를 하면서 이런 식으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시간들이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길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도 조금 더 대화에 참여하는 엄마 모드로 변해가고 싶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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