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야만 실존하는 가치에 대하여-
저는 미신을 잘 믿지 못합니다. 제가 느끼기엔 실존적이지도 않고 저의 작은 상식 선에선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게 많죠. 시험 전에 미역국을 먹지 않는 것부터 해서 토속신앙으로서의 굿 같은 것들도 결국엔 미신의 범위에 속한다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유의 것들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게 이성적 연관 관계가 있을 리가... 하늘에게 비는 것이나 미역국을 안 먹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는 게 좋은 성적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바뀐듯합니다, 여전히 미신을 잘 믿지 못하지만... 이젠 그것을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것 같지는 않네요. 우리 주변에 떠다니는 수많은 미신들이 실존하지는 않지만 분명 그 만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런 개념에서 일종의 종교도 상당히 거대하고 메이저 한 미신의 일종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종교를 욕한다기보단 미신을 좀 높이는 개념으로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 지금은 다 미신이 되어버린 토속 신앙도 결국에는 그 당시의 종교의 역할을 했고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지금의 메이저 종교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기적이나 부처의 열반 알라의 하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뜻으로요. (나름 천주교 교인이었습니다. 세례명은 요한)
미신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어렵고 혼란스러웠기에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런 불안을 크게 잠재워주는 것 중 하나가 미신이라 생각하니까요. 시험 볼 때 괜히 엿을 먹으면 딱 붙을 것만 같고 팬티를 안 갈아입으면 왠지 안타를 더 잘 칠 것만 같고 돼지피를 뿌리며 한바탕 굿을 하면 이때까지 자신을 쫓아오던 불행이 사라질 것만 같죠. 그게 아무런 인과도 과학적 근거도 없더라도 그게 의미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단지 그러기 위해선 필요한 준비물이 있을 뿐이죠. 존재하지도 않는 걸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능력.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미신은 진심으로 믿기 시작했을 때 가치가 생기기 시작하니까요.
그래서 사랑 또한 일종의 미신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과거와 달리 믿는 사람이 많이 줄었을 뿐. 중세 시대만 해도 사랑에 목숨을 바치는 건 아주 로맨틱한 행위였지만... 지금은 그냥 바보 취급을 받을 뿐입니다. 물론 ㅋㅋ 내가 봐도 진짜 바보긴 함. 하지만 그래도 실존하지만 않지만 의미로서 아직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아직도 love sick girl 과 love sick boy가 존재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쉽고 강력하게 믿을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모양이에요. 사랑은 엄청 유명한 미신이기에 다들 알고 어느 정도는 믿고 있지만 그 믿음의 강도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리고 너무 매몰되면 삶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도 미신스러운 특성이네요.
저는 원체 미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랑을 관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저에겐 그게 실제적으로 느껴지는 감각 중 하나니까요. 연인이라면 '연애' 부모님이라면 '도리' 친구들이라면 '의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죠. 그 모든 것 속에 사랑이 있다는 말은 제게 좀 오글거리게 다가왔으니까요. 그게 뭔데 이 ㅆ덕아 라는 말이 속에서 끓어넘쳤습니다. 그랬기에 역도 성립했죠.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잘 믿지 못했으니까요. 그게 설사 부모님이거나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더라도. 저는 원래 메마른 사람의 일종이었습니다. 한 번도 젖어본 적이 없으니 그게 당연한 것처럼 살아왔었네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 신기했습니다.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좀 납득이 안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언제나 이해에 도달하진 못했으나 관계적으로 해석해서 언제나 반납하고 갚으려고만 했습니다.
언제나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을 갈고닦아온 제게 연애는 그렇게 어려운 관계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시작은 어렵습니다... 정말루...). 그냥 제일 친한 친구라 생각하고 존중하고 잘해주면 관계는 언제나 잘 유지되어 갔으니까요. 그냥 제일 친한 이성친구 = 연인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 같은 건 믿기는커녕 아예 인지조차 못 했던 것 같네요. 그건 전혀 실제적이지 않고 감각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미신처럼 저와 먼 이야기인 것만 같았네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러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 때가 도래했을 때 저는 인정하고야 말았습니다. 이건 실제적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었구나. 이게 진짜 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이 알 수 없는 미신적인 상태에 내가 도달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평생 갈고닦아온 이성과 판단 능력은 온 데 간 데도 없는 채 단지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만 남아있었으니까요. 물론 그런 괴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면 다시 원래의 저로 돌아오겠지만 그 순간에 한 번이라도 돌입해 본 저로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때로 돌아갈 자신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사랑이라는 미신을 믿을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를 좋아해 줬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미신을 잘 믿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것도 아닌 저를 좋아하려면 보통 콩깍지로는 안될 테니까요. 어찌 보면 반쯤 미친 상태. 존재하지도 않는 걸 믿고 확신할 수 있는 상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얼마나 그것에 대답해 왔는지...
내가 더 많은 시간을 쓴다고 내가 더 돈을 많이 썼다고 내가 더 신경을 잘 쓰고 배려심이 있다고 해서 그들보다 제가 더 사랑을 많이 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계산들은 미신 앞에선 다 무의미해지고 단지 그것을 얼마나 믿고 미쳐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았나 싶네요. 얼마나 자기가 무너져 내렸는지 얼마나 헛되었는지와 같은 마법적인 인식만이 남을 뿐. 수치는 사랑에 어떠한 기록도 되지 못합니다. 미신이기 때문에.
과거엔 그런 미신의 힘을 아예 이해하지 못해고 사실 지금도 그렇게 잘 알고 있나 싶습니다. 제게 잡히지 않는 건 너무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확실하게 미신의 의미와 함은 깨달은 듯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이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도요.
미신은 믿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물론 너무 매몰되면 그것 또한 문제겠지만... 그게 삶의 힘이 도움이 된다면 이젠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궁합을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상대방을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게 의미가 될 테고 사주를 봐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그것 또한 의미고 타로를 보며 용기가 생긴다면 그것 또한 의미니까요. 이런 모든 행위는 믿음의 크기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비웃기만 한다면 당신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는 돈 낭비가 되겠죠.
물론 저도 비스므리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언제나 이성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으니까요. 이해하지 않으면 인식을 하지 않아 왔지만... 세상엔 이해의 영역으로만 이성의 영역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 요즘입니다. 아직도 부성애라는 게 이해가 되질 않는데 이젠 그래도 느낄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겠죠. 이해는 아직 부족하나(사실 불가능일지도 모르겠지만) 느낄 수는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새로운 감각이 열린 것 마냥. 그리고 이 정도의 인식이면 충분하지 않나 싶네요. 마치 다른 미신들처럼.
아무리 봐도 사랑은 일종의 미신이 확실합니다.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고 이해가 되지도 않고 맥락도 근거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걸 잘 활용하고 싶다면 바보처럼 미친 듯이 믿어보는 게 시작일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형체가 없는 미신에 힘이 생길 테니까요.
ps.
아직도 <파묘>하면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굿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네요. 만약에 이런 에너지를 진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생에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마치 굿판에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처럼(노래를 들으며 우는 분이랑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그것으로 마음에 큰 해소가 된다면 뭐 돈이야 중요하겠습니까. 내가 일단 살아야지. 뭐든 매몰되지 않는 선이라면 도움이 된다면 그게 다 의미고 힘일테죠.
단지 미신이다 거짓말이다 해버리면 이 모든 힘과 에너지가 무가치해질 뿐입니다. 언제나 사기꾼과 사짜가 문제일 뿐. 굿이라는 행위 자체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