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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겨울의 봄 06화

06. 서주원 작가

by 백수광부

태현은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매점을 떠났다. 주원도 곧 매점으로 돌아갔다. 태현이 먹고 간 것들을 치우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겨울은 한참이 지나도 주원에게서 연락 없는 걸 보고 가희에게 말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 낫겠어.”

“그러게. 연락이 없네.”


둘은 실망하며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가희 폰에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인터뷰, 하시죠.”


문자를 확인한 후 가희는 겨울의 손목을 끌어 매점으로 곧장 달려갔다.


주원은 테이블에 앉아 먼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겨울과 가희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주원 : 처음부터 내 것은 아니었어요.


주원 : 그렇다고 훔친 것도 아니었어요.


주원 : 어느 순간 내 옆에 와 있었어요.


겨울 : 작가님?


가희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눌렀다.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원 : 그래서 내 것처럼 느껴졌어요.


주원 : 가끔은 온전히 내 것이었으면 했어요.


주원 : 어느덧 내 것인 것 같기도 했어요.


주원 : 그래서 불안해졌어요.


겨울 : 왜 불안해지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주원 : 내 것이 될까 봐요.


가희 : 내 것이 되면 좋은 거 아닐까요?


주원 : 내 것이 된 것들은 다 사라졌어요.


주원 : 제대로 사랑하기도 전에 다 사라졌어요.


주원 :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요.


겨울과 가희는 시선 둘 곳을 몰라 테이블 위 커피잔만 쳐다보고 있었고 주원은 계속 바다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주원 : 그거 아세요? 깊은 바닷속으로 사람을 침몰시키는 건···.

사랑을 잃는 슬픔보다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일 수 있다는 것을요.


주원 : 행복은 불안이고. 그래서 행복은 두려운 존재죠.


겨울은 주원이 하는 이야기가 그저 소설 속 이야기이길 바랐다. 차마 그 말들이 본인의 삶과 연관되어 있냐고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일 것만 같아서.)


섬세한 젊은 작가가 상상으로 그려낸 말들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서 작가가 커피를 마시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5분간의 정적이 흘렀다.



겨울이 입을 열었다.


겨울 : 혹시 작품 속 빨간색 장갑이 그런 의미일까요?



주원은 겨울을 바라보았다. 겨울도 주원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겨울 : 내 것이 아닌 행복?


주원은 겨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겨울도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서로는 연민을 공유했다. 겨울의 마음을 알아챈 주원은 이내 시선을 가희에게로 옮겼다.


주원 : 앞뒤가 다른 동전 같은 것이죠.


겨울 : 앞면은 행복, 뒷면은 불안.


겨울에게 무언가 속내를 들킨 것 같은 마음에 주원은 마음이 불편했다.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주원은 일방적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잠시만요. 작가님.”


겨울이 주원을 불렀다.


“더 궁금하신 게 있을까요?”


주원이 겨울을 빤히 바라보자 겨울은 하려던 질문을 잊어버렸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7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때 가희가 나섰다.


“작가님, 이상형은 어떤 스타일의 여자예요?”


가희도 겨울도 주원도 그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가희는 자신의 입에서 나간 그 질문에 아차 싶었고 겨울도 맥락도 없이 나온 그 말에 부끄러웠다.


"네? 하하하."


주원만이 무거웠던 분위기를 와장창 깨는 가희의 신선하고 엉뚱함에 웃음이 터졌다.


주원은 웃으며 카운터로 걸어가서 할 일을 했고 겨울과 가희도 민망함에 자리를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겨울은 가방에서 가희가 빌려준 책을 꺼냈다.


“사인받을까?”


가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겨울이 용기를 내어 주원에게로 다가갔다. 그에게 책과 펜을 내밀었다.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주원은 책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무언가를 정성스레 쓰곤 다시 겨울에게 책을 돌려주었다. 마침 손님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와서 가볍게 목인사만 하고 둘은 밖으로 나왔다.


“가희야, 이 책은 이제 내 거야.”

“야, 뭐야~ 내 책이잖아.”


“선물 줬다고 생각해. 고마워.”


겨울은 책을 얼른 가방에 집어넣고 가희가 달라고 해도 뺏기지 않았다. 매번 양보하던 겨울이었는데 가희도 이번엔 웃어넘겼다.

겨울은 집에 도착해서 책을 펼쳐보았다.




천천히 스며드는 사랑을 좋아합니다.

- 서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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