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갇힌 고전을 꺼내는 법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리사이틀을 듣고

by sue

찬란함이란 소모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일까. 가장 높고 위대한 모든 것들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자꾸만 꺼내지고, 회자되고, 재생산되며 결국 그것이 어떤 고통의 심연에서 길어올려졌는지조차 잊힌 채 유통된다. 귀가 잘려나간 고흐의 옆얼굴이,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그러했듯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과 14번이라는 이 위대한 두 작품 또한 그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감상의 패턴이 고정되버린 작품들. 너무 익숙해져버린 선율은 닳고 닳아 마음에 닿기도 전에 귓가에서 흩어지고 만다. 그렇기에 이렇게 유명한 고전을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 고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비창과 월광이라는 별칭이 암시하듯 이 곡들은 쉽게 상투화되고, 감정은 도식화되며, 연주는 틀에 갇히기 십상이다. 이럴 때야말로 연주자에게는 ‘해석의 윤리‘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미 너무 많은 레퍼런스들이 존재하기에—그 어느때보다도 작품의 본질에 다가감과 동시에 순간의 감각을 불어넣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 플레트네프는 ‘어떻게 다르게, 그리고 진실되게 말할 것인가’라는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 그만의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대답했다.


시작부터 수상하리만치 느린 템포로 짐짓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곡을 첫음부터 낯선 것으로 만들며, 청중들이 숨을 고르고 의자를 고쳐 앉게 만들었다. 양손은 아주 미세하게,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빗겨나가며 타건되었고, 의도적인 리테누토를 통해 몇몇 음들이 시간의 틈새로 사라져버린 듯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지긋한 루바토로 마치 잔잔한 물 위에 먹물이 퍼지듯 하나하나의 음을 공간 속에 천천히 확산시켰다. 특히 두 번째 악장에서의 템포는 더욱 늦춰졌고, 화음과 잔향이 층층이 쌓이며 곡의 구조에 입체감이 더해졌다. 일반적인 연주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호흡 조절, 정지의 표현, 그리고 순간순간의 포르테피아노와 데크레센도까지. 이 노거장의 섬세한 ’맺고 끊음‘이 빛바랜 선율을 지금-여기의 감각으로 되살려냈다.


익숙함의 껍질을 벗은 아름다움이 새로운 숨결을 통해 영생을 얻는 순간. 이렇게 클래식은 또다시 영원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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