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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은 여전한데, 나는 이제 갈 곳이 없다.

by 마음계발

‘가지 않음’과 ‘가지 못함’

가지 않음은 갈 곳이 있다는 뜻이고

가지 못함은 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명절에 ‘가지 못함’이 되었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낯선 감정이다.

이상하게 차가운 느낌이다.


나는 이 낯섦이 무엇인지

잠시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린 시절 우리 집

골목 입구에 서 있다.

조금 걸어 들어가면

파란 대문이 있었고

그 안에서는 송편을 빚는

냄새가 났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대.”

엄마의 말에 우리는 정성스레

송편을 빚었다.

한 채반에 놓인 송편의 모양은

누가 봐도 세 명의 솜씨였다.

엄마, 언니, 그리고 나.


“어떤 송편이 제일 예뻐?”

아빠와 남동생에게 묻자,

그들은 잠시 웃으며

한 송편을 가리켰다.

언니가 빚은 송편이었다.

그때의 공기엔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부엌에는 전 부치는 소리가,

마당에는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우린 제사도, 친척도 없었지만

다른 집에서 하던 음식은 거의 다했다.

엄마는 언제나 송편을 빚고

전을 부치며 말했다.


“그래도 명절이니까”


엄마의 요리는 온기가 되어

따뜻한 명절이 되었다.

나는 그 온기 속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제는 그 골목도, 그 냄새도

그때의 온기도 사라졌다.

명절은 여전한데,

내가 서 있던 자리는 비어 있다.


명절은 여전한데,

나는 이제 갈 곳이 없다.



그래,

이 낯선 감정은

다시는 그 골목을 만나지 못하는

이별의 감정이었구나.

안녕... 잘 있어...

나의 명절...

나는 이제 명절과 이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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