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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끝에서, 나를 만나다.

by 마음계발

나의 첫사랑은

잘 마른 장작 두 개가 포개지며

순식간에 타오르는 불꽃같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감정이 불붙었고

세상은 우리 둘 뿐인 듯했다.

그러나 급하게 타오른 불은

그만큼 빨리 사그라든다.

남겨진 것은

재와 여운,

그리고 남아있는 마음뿐이었다.

그 재는 쉽게 식지 않았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남아 있던 감정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어짐은 몸의 상처처럼

시간이 지나면 아문다고 믿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피멍처럼 깊게 스며 오래 남았다.

그리움은 눈물이 되었고

눈물은 기억이 되었다.

잊고 싶을수록

그의 얼굴은 더 또렷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도망치지 말고

이 감정이 끝나는 곳까지

한번 가보자고.




그래 가보자.

이 감정의 끝이 어디인지.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




감정의 어둠 아래로

내 안의 그림자가 있는 그곳으로.


감정의 가장 아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오래 숨어 있던 나와 마주했다.

오후 세 시만 되면 울던 아이,

가족의 무너지는 시간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소녀.


나는 그들을 외면해 왔다.

두려워서,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나는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빛으로

결핍을 가리고 있었음을.


그 결핍이 나의 껍질이 되었고

그 껍질은 나를 지키는 동시에

나를 고립시켰다.



그러나 바닥에서야 알게 되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껍질을 벗겨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천천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붙잡고 있던 과거를

두려움과 분노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둔

모든 가면을



비우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벼워지자,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나는 그 바닥을 딛고

천천히 다시 위로 올라왔다.

그곳에는 빛이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났다.




첫사랑의 끝에서

나는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를 사랑했던 만큼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나를 사랑하니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누군가를 통해

무언가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비워낸 자리로부터

다시 흘러가는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의 첫사랑, 잘 가.

그리고... 고마워.



<마음계발 Tip>


첫사랑의 끝에서

어떤 ‘나’와 마주했나요?


그 만남을 외면하지 말고

잠시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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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