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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문주/믹스커피

by 자몽커피


마티스는 색채를 개념화하는 자신만의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나는 마침내 색상을 영감에 따라 조립되는 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색채는 관계에 따라 변형될 수 있다. 검정을 프러시안블루와 같은 차가운 색 옆에 놓으면 빨강이 되고, 주황처럼 매우 뜨거운 색채 옆에 놓으면 파랑이 된다. 빨강이 있으면 초록도 있어야 한다. 모든 색채는 함께 노래한다. 강도는 합창단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며, 마치 음악적 화음과 같다." p.164




"그림이 말을 걸 때, 심리학이 답하다!"

프로이트, 융의 심층심리학부터 고흐, 피카소까지

미술치료학자가 안내하는 명화 속 심리코드



이 책은 혼자 읽을 것이 아니라 독서모임을 해야 하는 책이다. 우리 모임에는 미술을 좋아하는 쌤들이 특히나 많다. 시립도서관에서 하는 도슨트 수업을 듣거나 미술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쌤도 있다. 나 또한 도슨트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건 그림공부에 정도는 없다는 것. 화가들의 삶부터 미술사조 공부는 기본이고 테크닉, 재료, 상징성까지 그림을 하나 해석하는데 들이는 노력은 시간에 정비례하는 것 같다.

미술심리상담사인 저자는 화가와 그림을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작품을 설명한다. 예술이 수천 년간 감정, 아이디어, 신념을 전달하는 데 사용된 강력한 자아 표현의 한 형태라는데 우리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알차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화가들도 많았다. 우울증이나 정신병이 예술가들의 개인적 측면에서는 불행한 면들이지만 위대한 예술작품의 탄생이라는 측면에서 양면성을 띤다.

저자가 직접 상담했던 환자들의 그림들이나 저자 자신의 그림도 수록이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왜 어른이 되어서 그림을 멈추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여정이기도 했다.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즉흥적으로 그릴 수 있는 난화 그리기 같은 경우는 바로 실천할 수 있었다. 작가가 풀어놓은 심리학적 접근 위에 예술작품을 보고 느낀 나의 감정이 더해진다면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구성


1장 미쳐야 그릴 수 있다? :예술과 광기의 위험한 동행

2장 내가 보는 나 : 자화상에 숨은 이야기

3장 당신 안의 여성과 남성 : 아니마와 아니무스

4장 색이 말하는 것들 :색채 심리학

5장 무의식적 상징 :자아의 표현



*1장 미쳐야 그릴 수 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무의식을 발견한 이후 정신질환 환자를 위한 치료 약물이 개발되었고, 교도소와 다름없던 병원에 갇혀 있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독일의 의사 한스 프린츠혼에 의해 발견된 아우구스트 나테러의 커다란 눈동자 그림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프린츠혼에 의해 재조명된 엘제 블랑켄호른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자신이 국왕의 배우자라는 믿음으로 그린 <황제 부부가 있는 그림>부터 지폐그림까지, 12년 동안 무려 450점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는데도 미술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완고한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무시당한 자신을 인정받고 싶었던 강한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고흐의 <파이프가 있는 빈센트의 의자>라고 한다. 의자 위에 놓으니 파이프는 프로이트가 말한 거세 불안과 아버지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와 사랑, 증오가 모두 섞인 매개체라고 한다. <폴 고갱의 안락의자>에는 고갱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표현되어 있으며 고흐가 고갱을 미워하는 것과 고갱을 향해 품고 있던 잠재적인 동성애적 욕망이 담겼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미술사에는 우울증을 앓은 많은 화가들이 있다. 에드가 드가도 그중의 한 명이다. 30대에 양쪽 시력을 거의 상실해했다고 하니 그가 그린 그림들이 다시 보인 건 사실이다.

점박이 호박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충격적이다. 외도를 의심한 어머니는 딸에게 아버지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충격적 이게도 쿠사마는 아버지가 다른 여성과 성관계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다. 그녀가 본 기이한 환각을 예술로 표현했으니 인간승리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솔직히 마케팅의 여왕 같다는 생각이 드는 화가였기 때문이다. 때로 정신질환은 예술을 위한 기본값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예술에 있어 미쳤다는 것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미술가는 작품에서 수행된 걸 보고 새로운 메시지를 다시 인식하고 내재화할 수 있다. 작품은 작가에게 계속 말을 걸고 그림 그리는 이의 경험을 담아낸다.

내면의 고통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창조하고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더 깊이 고통받을수록 작품은 더욱 강력하게 빛날 수 있기 때문이다. p.28



*2장 내가 보는 나

1484년 <13세의 자화상>은 현존하는 뒤러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드로잉이며 유럽 미술에서 가장 오래된 자화상으로 꼽힌다.

당시 자화상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자화상에 자신의 이름조차 서명하지 않았고,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수십 년간 예술가는 묘사할 만한 가치가 거의 없다고 여겨졌다.

17세기 화가인 램프란트는 100점에 가까운 자화상을 그렸는데 우리에게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지금의 인스타 대용으로 사용한 최초의 화가가 아닐런지.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 교통사고로 버스 쇠기둥이 복부와 자궁을 뚫고 나갔다는 이야기는 볼 때마다 너무 끔찍하다.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도 결국은 파경으로 끝나고 그녀는 <가시 목걸리와 벌새가 있는 자화상>을 그린다. 칼로는 초현실이 아닌 가장 잘 아는 주제, 즉 자신과 슬픈 현실을 그린 화가이다.


그림과 함께하는 내면의 대화는 치료의 내면적 과정과 동일하며 자기 인식, 자기 의문, 판단, 사고, 수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치료에서 자화상을 그린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이 내외부 에너지 사이의 관계에 존재하는 복잡한 투사 과정이다. p.79


*3장 당신 안의 여성과 남성

심리학은 크게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는 심층심리학과 현재 드러난 문제와 자신의 왜곡된 생각의 불편함을 다루는 인지 행동적 심리학으로 나눌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발견한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정신분석의 기본 개념이다. 그가 양자로 삼고 싶을 만큼 인정한 사람이 바로 칼 구스타브 융이다. 그 둘은 함께 여행하고 강의하며 연구했지만 무의식에 관한 견해차이로 결별하고 만다.

융의 분석심리학은 우리 마음의 깊은 심혼을 다루는 경험적 심리학이라고 불린다. 심혼이란 인간이 경험하는 신의 형상이나 형이상학적 사고의 원형이다. 그의 아니마/아니무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오직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각기 대조적인 내적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나타낸 화가로 구스타프 클림프, 게르치노, 잭슨 폴록, 오스발도 리치니, 르네 마그리트를 소개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14살에 어머니가 자살한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시도>와 <강간>같이 그의 기이한 그림들이 이해가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융이 말한 아니마/아니무스의 상이란 남성 무의식 속의 여성적 요소 '아니마'와 여성 무의식 속의 남성적 요소 '아니무스'를 뜻한다. 라틴어에서 아니마는 'soul'을 의미하고 아니무스는 'spirit'로 통하는데, 한국어로 따로 번역하기가 애매할 정도로 둘 다 '영혼'이라는 뜻을 가졌다. p.124



*4장 색이 말하는 것들

가장 흥미로운 장이었다. 가장 오래된 색, 빨강에 대해 새롭게 안 사실. 스페인어로 '콜로라도'는 '색'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동시에 '빨강'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color' 단어 자체가 곧 '빨강'이었던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진실'로 풀어준 점도 좋았다. 빨강은 고통스럽지만 진실의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귀한 빨강이 부정적인 의미로 변모하기 시작한 건 프랑스혁명부터다. 극단적 혁명을 상징하는 빨강은 여전히 사회주의 색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색은 바로바로 파랑. 힌두교에서 파랑은 모든 걸 포괄하는 색이라고 한다. 멕시코와 미국 남서부에서는 파란색이 악마와 나쁜 에너지를 막아준다고 믿었다. 그런데 왜 기분이 우울할 때 'blue'라는 단어를 쓸까? 14세기 영국의 제프리 초서가 쓴 서사시에 'blewe'라는 구절이 사용되었고 18세기 조지 콜먼의 희곡 <블루 데블스>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1858년까지만 해도 바다를 묘사하는데 파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에서 파랑을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단어가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 파랑을 썼다고 무조건 우울하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으며 색채와 조도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피카소가 파란색 물감으로 그린 <인생>과 라울 디퓌의 <니스-천사들의 만>을 보면 같은 파랑이여도 느낌이 너무 다르다.

너무 아름다워 수많은 여성의 마음을 빼앗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은 색이 있었으니 바로 초록이다.

스웨덴 화학자 칼 빌헬름 셀레가 초록색을 발견한 후, 1세기 이상 초록색 열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초록 염료에는 비소가 들어있었고 나중에는 살충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초록의 화가인 토마스 듀잉이 그린 <정원에서>와 <류트>를 보고 있노라면 초록이 가진 신비로움의 끝을 보는 것 같다.

가장 밝고 긍정적인 색이지만 가장 선호하지 않는 색이 바로 노랑이다. 수세기 동안 노랑은 '이단자' 또는 '신뢰할 수 없는 자'라는 인식이 흔했다고 한다. 서양에서 노랑은 오랫동안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구별하는 색이었다. 매춘부, 요양소, 유대인들을 식별할 때 쓰인 색이었다니.

노랑 하면 떠오르는 화가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고흐가 노랑을 좋아했다기보다 압생트라는 술에 의한 '황시증'때문이라는 것이다. 압생트에 들어있는 테르펜성분과 물감에 들어있는 납성분으로 인해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현상이다. 시각에 이상이 없었던 점이 이를 더 뒷받침하고 있다고.


예술가들은 종종 자신의 작품에서 현실을 묘사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작품으로 화가의 신체적 환경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화가가 공유하고자 했던 현실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고민해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다. p.208



*5장 무의식적 상징

호안 미로나 이브 탕기,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초현실주의 화가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이론들인 '무의식'과 '꿈의 해석'을 자신들의 중심사상으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무의식에서 억압된 욕망이 우리의 행동을 형성하고,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심리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초현실주의 예술을 이해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예술을 통해 비이성적인 걸 탐구하고 사회적 규범에 도전하며 숨겨진 감정, 꿈, 억압된 욕망을 표현하고자 무의식에 접근하고자 했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시하하는 바와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달리 위로 형이 있었는데 22개월 때 감염성 위염으로 죽게 된다. 그의 부모는 달리에게 형과 똑같은 이름을 지어준다. 달리는 이를 두고 부모의 '무의식적 범죄'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달리가 어렸을 때 성병에 걸린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책을 아버지가 보여줬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성행활에 대한 트라우마가 평생을 괴롭혔다. 프로이트의 제자나 다름없었던 달리는 정신분석 이론에 정통했다고 한다. <죽은 형의 초상>, <깨어나기 1분 전 석류 주위를 날아다니는 벌에 의해 야기된 꿈>이 다시 보인 건 사실이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절대적 진실을 깨달았다. 죽은 형은 내 영혼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고 형은 부모님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나조차도 그의 이름을 따서 '살바도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이 엄청난 충격은 계시와도 같았다. 내가 부모님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레이스로 덮인 죽은 형의 사진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다. 그의 아름다움은 내게 완전히 반대되는 반응을 일으키게 했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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