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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자본론

임승수/다산초당

by 자몽커피



그러니까 역사의 변화와 발전은 '위인들의 결정',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 혹은 '생각의 진보'

덕분이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역사 유물론은 이건 본말이 전도된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즉, 위대한 인물들의 결정이나

사람들의 정신은 사회 변화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들이 처한 '물질적인 조건', 그러니까 어떻게

먹고살고, 무슨 도구를 쓰고,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가 먼저 바뀐 다음, 그런 변화가 사람들의

의식이나 제도, 문화의 변화를 추동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은 이것이다.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 이론이 자본주의 사회의 정규 교육 과정에서 진지하게 다뤄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자본주의 토대 위에서는 자본주의 교육이 들어선다.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익숙했던 장면들이 점점 낯설게 느껴진다. 더 파고들면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p.270




ㅁ얼마나 벌어야 충분한가

ㅁ일하지 않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가

ㅁ인간의 본성은 원래 이기주의적인가

ㅁ가난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인가

ㅁ세상이 부유해지면 나도 부자가 되는가

ㅁ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알고 있는가


부유해도 행복할 줄 모르는 나라의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고전,

마르크스 <자본론>과의 가장 유쾌한 재회


표지 그림은 프랑스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티스트인 장 줄리앙의 그림이다. 삼성의 폴더블폰과 인형 캐릭터를 연결한 체험존 전시가 8월 강남에 있는 삼성 빌딩에서 열렸고, 지금 부산 누누 팝업 스토어에 가면 장 줄리앙의 굿즈와 전시를 볼 수 있다. 종이인형 캐릭터는 아마 친숙할 것이다. 인스타를 둘러보니 풍경 그림도 많다. 2040개나 되는 피드를 아무리 찾아봐도 표지그림의 원본을 찾을 수가 없다. 아~ 눈 아파.

장 줄리앙의 일러스트를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는데 기발한 아이디어에 한번 웃고 심플한 표현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임승수 작가의 글도 그렇다. <자본론>이라는 심각한 책을 이렇게 가벼우면서 유쾌하게 그려내다니. 유사한 결의 작가를 찾아 표지를 쓴 다산초당의 센스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표지는 병 속에 한 남자가 물이 아니라 돈에 둘러싸여 HAPPY가 아닌 HELP를 외쳐대고 있다. 그 이유는 책을 통해 알아보자.


출처 :인스타 @jean_jullien



다윈의 <종의 기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세상을 바꾼 대표적인 책으로 뽑힌다. 이들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밝히는 책이다. 그냥 책이 아니라 수많은 수식어가 붙으면서 말이다. 올 상반기에 <종의 기원>을 읽었고 그 사이 미술심리를 다룬 책에서는 프로이트를 접했으니 마지막으로 <자본론>만 남았다. 그런데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이것도 선입견 때문일 테지만 재미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예방주사부터 맞기로 했다.

방구석 피아니스트이며 와인으로 가산탕진 중이라는 임승수 작가의 <자본론>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자본론>은 단지 경제학의 고전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불평등한 세계와 그로부터 비롯된 불안과 무력감의 근원에 대해 낱낱이 드러내는 사회 해부학서이다.

저자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지금이야말로 마르크스의 혜안이 절실한 시기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인공지능과 로봇은 바로 오늘날의 새로운 생산력이다. 산업혁명 시기 등장한 기계가 인간의 팔과 다리를 대신했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은 이제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하고 있다. 단순노동뿐 아니라 회계, 법률, 글쓰기, 그림 그리기와 같은 전문적, 창의적 영역까지 파고들고 있는 지경이다. 자본주의 사회질서를 뿌리째 흔들고 있으며 단순히 일자리의 변화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 상황으로 우리를 끌고 가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시 마르크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독특하게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의대를 지망하던 전교 1등 학생이 저자의 강연을 듣고 사회학과로 진로를 바꾸려고 한다. 이에 열받은 학생의 아빠가 작가를 찾아오면서 소설이 시작한다. 자수성가한 기업가인 학생의 아빠는 매번 와인을 사 오는데 자연스럽게 와인이야기도 들어있어서 작가의 와인 관련 책도 읽고 싶게 만든다.

콕 집어 50대가 읽어도 좋고 십 대, 이십 대, 아~ 입 아프다. 입시생도 좋고 특히 의대나 사회학과 지망생들, 또 입시전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학부모들까지 모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쓰여 있다.

작가와 기업가인 입시생 아빠의 대담형식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에 잠깐식 샛길로 빠지는데 그것도 재미있다.

<자본론>에 대한 오해도 깔끔하게 풀어주고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산업구조가 바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도 명쾌하다. 자칫 자신의 주장만을 강조하는 책을 보면 읽다가 덮고 싶어 지는데 작가는 사람의 인식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는 겸손의 태도도 가지고 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학생의 시각으로 쓰인 <자율연구 노트>는 총정리 개념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ㅁ사회주의 체제, 사라진 과거의 이론 아닌가?

현대 국가들의 경제 운용 방식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한 혼합경제 시스템이다. 시장의 자율성과 국가의 공적 개입을 결합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 의료⸳ 교통 같은 공공 서비스를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만 맡겨두면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소득이 적은 사람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할 것이고 두메산골에는 기차나 버스가 다니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대한민국 국민부담률이 29.7퍼센트에 달하고 있으니 사회주의의 복지나 공공서비스가 명맥만 유지한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지 사회주의에 관한 내용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다. 누군가 사회주의가 싫어서 <자본론>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면, 마치 부처가 싫어서 성경책을 읽지 않는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다.


ㅁ임금은 노동의 대가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은 노동의 대가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이를 풀어서 얘기하면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이다. 즉 노동자의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돈을 지급한다는 게 바로 임금의 정체라는 것. 애초에 일한 만큼 받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한마디로 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해서 일을 시키면서 먹고살 만큼만 임금을 지급하고,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을 자기가 이윤으로 다 가져가서 부자가 되는 것이다.



ㅁ자본가는 자본을 제공한 대가로 이윤을 받아 간다.

봉건주의 시대 지주가 소작인이 열심히 농사지은 수확물을 가져가던 명분은 바로 소유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유권은 예로부터 특권층이 이득을 취하는 불평등한 상황을 합리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원래 그런 거 아니야? 는 없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 논리라는 지적 감옥에 갇힌 것이다.



ㅁ마르크스는 개인의 재산을 부정했다.

마르크스의 소유권 비판은 소소한 개인의 재산을 부정하던 게 아니었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것은 바로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다. 공장, 토지 등과 같은 생산수단을 소수의 자본가가 독점하면서 발생하는 불평등 구조를 지적한 것이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해 부를 축적하고 그 이윤을 독점하는 구조를 비판했지, 개인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집을 소유하는 것을 문제삼은 것은 아니다.


ㅁ사회주의가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을 배제한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회주의에서도 성과급제를 시행해서 근로 의욕을 북돋는다. 솔직히 농땡이 치는 사람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똑같은 보상을 받는다면 그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ㅁ사회주의에서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을 도외시했다.

인간은 공감과 이타심이 있는 반면 때로는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면도 드러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이기적이거나 부정적인 행동이 인간 본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결국 공감과 이타심도 인간 심리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일수록 이기심이 커질 수밖에 없고 협력이 생존에 유리한 사회에서는 이타심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ㅁ돈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환상일 뿐이다.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이다. 모두가 코인에 재테크만 하고 산다고 가정해 보자. 농사짓는 농부가 없다면, 옷을 만드는 공장이 없다면, 입고 먹는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한순간도 제대로 살 수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는 이 소중하고 감사해야 할 타인의 노동을 단순한 화폐 수치로 전락시킨다.

가격만 눈에 들어오고 그 배후의 노동이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내 돈 내고 산 물건 내 맘대로 한다는 생각을 쉽게 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이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만 남는 순간, 우리는 삶의 중요한 일부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노동의 의미를 되찾는 것은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ㅁ체험이냐 소유냐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는 자유롭다는 지독한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신이 보유한 화폐의 크기만큼 자유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삶에는 두 가지 시간이 있다. 화폐와 교환되는 시간, 화폐와 교환되지 않는 시간. 대부분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시간은 낭비이며 쓸데없다는 식으로 취급한다.

체험형 소비가 소유형 소비보다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한다. 그러니 개인이든 공동체든 한정된 재원을 사용할 때 체험형 소비를 진작하고 독려할 수 있는 방향으로 투자해야 지금보다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


ㅁ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과 갈등이 사회 변화의 원인이 된다.

토지 소유를 중심으로 한 영주-농노의 생산관계에서 기계제 대공업이라는 새로운 생산력이 나오게 된다. 상공업의 발전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전한 자본가 계급은 신분제를 기초로 한 당시 시스템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해체할 필요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과 제도는 이러한 생산관계를 합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한 시대의 지배적 이념은 항상 지배 계급의 이념일 뿐이다. 계몽사상이 시대적 사상으로 부상하게 된 건 순전히 자본가 계급에 의해 선택받았기 때문이다.


ㅁ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물건을 구매할까?

다수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사라진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생산한 물건들을 누가 구매하겠는가? 기업도 존립 기반을 잃고 붕괴하고 말 것이다. 결국 공공재나 사회적 소유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기계가 24시간 쉬지 않고 작동하니, 사람들은 생계를 걱정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원하는 분야에서 자아실현에 몰입할 수 있다.


ㅁ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공산주의는 일종의 최종 목표지라면, 사회주의는 그 목표지로 가는 과도기 혹은 이행기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점진적으로 해체되면서 '생산수단을 사회가 소유하는 체제로 전환해 가는 중간 단계가 사회주의인 것이다. '각자 능력에 따라 일하고 성과에 따라 분배한다'라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남아 있기는 하다.


ㅁ공유지의 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모두의 것이라고 할 때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남용되거나 방치되는 현상을 말한다. 공동체가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자율적으로 관리하면 공유 자원도 충분히 잘 보존될 수 있다는 사례가 있다. 인간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참여할 때 더 책임감 있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날 거라는 우려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오해일 수 있다.


ㅁ기본소득의 옹호자는 오히려 최고 부자들이다.

기본소득을 사회주의자들은 반대한다. 오히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샘 올트만, 빌 게이츠 같은 최고 부자들이 긍정적으로 얘기한다. 자신들의 물건이 계속 팔려야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결국 다수의 대중을 소비자로서만 가까스로 머물게 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라는 생산수단을 독점한 극소수 자본가의 특권과 권력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ㅁ인생의 절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돈이 아니라 시간의 관점에서 인생을 보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파는 것, 그것이 바로 직업을 갖는 것이다. 행복을 미루면 행복은 오지 않는다. 타인의 욕망이 투사된 삶에는 나의 욕망이 들어 설 곳이 없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사는 사람을 삶의 주인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타인의 욕망이 바람직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ㅁ마르크스주의에 빠진 자식을 설득할 묘수는 무엇인가

<체 게바라 평전>, <살바도르 아옌데:혁명적 민주주의자>, <프란츠 파농>의 공통점은 혁명가이자 의사였다는 점.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신념을 가지고 의사가 되어서 보수 일변도의 의사 사회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며 빛과 소금이 되라고 격려하는 편지를 보낸다. 과연 학생의 선택은 무엇일까?


*나아가며

결국 이 책도 행복에 관한 것이었다. 돈을 많이 벌면, 몇 년도에는 같이 자꾸 행복을 미루다 보면 행복은 오지 않는다. 작가는 간병인이었던 브로니 웨어가 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를 소개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쏟아내는 후회가 사람들마다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 작가는 이를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고 조회수가 대박이 터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소소해서 더 큰 울림이 있는 것 같기도.


1.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2.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3.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5.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언제나 너의 앞에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행동은 언제나 사랑이다.

_마이스터 에크하르트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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