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너무 어지러울 땐, 원숭이 모드를 가동한다. 원숭이가 된 것처럼, 그저 먹고 자고 씻는 것에만 신경 쓰는 삶. 나의 과거, 현재, 미래, 아주 먼 미래까지 걱정하는 것을 멈추는 삶.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그 무엇도 시청하지 않고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삶.
안타까운 건, 서너 번은 원숭이가 될 수 있었지만 그다음부터는 원숭이 상태에서도 걱정과 근심이 멈추질 않았다. 그저 우울한 원숭이가 되어 버렸다. 이래서 우울증이 무섭다는 건가.
아니면 나란 사람 자체가 원래 그리도 걱정이 많은 것인가.
20대가 된 이후로 쭉 우울증에 걸려 있으니, '원래의 나'를 기억해 내기 힘들다.
이렇게 괴로운 이유가 과연 병 때문인지, 타고난 내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아, 이러다가는 또 생각의 늪에 빠져버릴 것 같아서 멈추겠다. 그래도 가끔은 원숭이 모드를 켜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 병원을 찾았던 게 가을에서 겨울 넘어가는 시기였어서 그런지, 매년 그 시기가 돌아오면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나 이제 정말 괜찮아! 다 나은 것 같아!" 선언을 해도, '그 시기'만 돌아오면 다시 반복되는 불안과, 공황과, 좌절과, 걱정과, 이 고통을 멈추기 위해 삶을 끝내자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 해에 한 번씩은 푸닥거리를 했다. 지난봄쯤에는 목을 매기 위해 밧줄까지 샀다. 남들은 흐드러진 벚꽃을 즐기던 나날에,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언제 실행할까'만 하루종일 고민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살아 숨 쉬며 글을 쓰고 있다니. 다만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요맘때가 '그 시기'가 머지않은 날들이라는 것. "나 정말 진짜 다 나았어!" 환희에 찼다가, 다시 까무룩 TV 전원 꺼지듯 시꺼멓게 가라앉으면 좌절감이 더 크다. '올해는 정말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 거지. 이 병에 끝은 있을까.' 나는 요즘 매우 조심스럽다.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한다. 우울해서 모든 걸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가? 혹은 지나치게 들뜨며 내가 원하면 뭐든 다 이룰 수 있다는 환희에 젖어 있는가? 의사 선생님이 둘 중 하나라도 증세가 나타나면, 병원으로 달려오라고 하셨다. 나는 어김없이 돌아올 '그 시기'를 이번에도 잘 버텨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