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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배우기

by 스캇아빠

브런치에 구독한 글을 읽다가 눈물이 터졌다. 처음에는 새어 나오는 울음을 애써 참으며 꺽꺽거리다가, 이내 집에 나 혼자만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 우는 소리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구슬프거나 감정이 동요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3살짜리 아이가 엄마한테 혼나다가 매 맞는 게 아파서 우는 것처럼 원초적이고 시끄러운 울음 같았다. 애써 참았던 게 우스을만큼 생각만큼 그리 오래 울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 흘렀다.


"널 보낼 용기"가 책으로 나왔다는 글이었고, 인터넷 책 소개와 책 속 토막내용들을 읽다가, 눈물이 터졌다. 얼마나 아플지 안쓰러웠고,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얼마나 이기적인지, 미안함과 후회가 가슴을 세게 누르는 것 같았다.




이번 핼러윈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캐나다로 이민온 후 매년 하던 호박카빙도 하지 않았고, 마당 곳곳에 무서운 장식을 놓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어떤 핼러윈 분장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사탕을 얻으러 어디로 다닐 건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지난 12년간 계속해온 핼러윈 행사는 아무런 계기 없이 멈춰졌다.


나는 내가 좀 더 움직이면 될 거라 생각했다. 나 혼자지만, 조금 더 노력하고 바쁘게 움직이면, 다른 집처럼 엄마 아빠가 하는 일을 모두 할 수는 없더라도, 1.5명 정도의 일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핼러윈에는 해골 장식들로 집을 꾸미고, 크리스마스에는 트리와 전구들로 집 안팎을 꾸몄다. 이스터데이에는 집 곳곳에 초콜릿을 숨겨두었고, 밸런타인데이에는 반 친구들 이름을 적은 선물봉지를 하나씩 준비했다. 생일 때마다 잔치를 했고, 카드를 만들어 초대했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한부모가정이라서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부지런히 움직였다. 봄에는 꽃구경을, 여름에는 바닷가로, 가을에는 애플피킹과 축제를 겨울에는 크로스컨트리를 하러다녔다. 크리스마스에는 일부러 작은 선물들로 여러 개를 준비해서 크리스마스트리밑에 놓아놨다. 1시간 떨어진 도시의 축제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10년을 키웠고. 지금 나는 아이들에게 자립심을 가르치지 못 함을 후회하고 있다. 말로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고, 자랑스럽다고 했었지만, 정작 나는 효율과, 희생이라는 변명으로, 아이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했다.


나는 "기다려"를 배우고 있다. 와이프는 "기다려"를 어려워 하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본다. 하지만 내게 "기다려"는 스캇에게 간식을 앞에 두고 먹지 않도록 하게 하는 훈련과 비슷하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가득하지만, 아이들이 부탁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신발이 더러워 빨아 줄 수 있어도, 이제 날씨가 추워져서 새 외투가 필요할 것 같아도, 당장 핼러윈에는 뭐 할 건지 모를 때, 핼러윈 코스튬 파는 곳으로 쇼핑을 데려갈 수 있어도, 대학교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내가 조언해 줄 수도 있어도, 나는 아이들의 "도와줘"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어렵다.


내일은 스캇한테 기다려 없이 간식을 좀 많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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