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 곡에 기대다.
나는 여러 가지 ‘병’을 가지고 산다.
에너지를 과다하게 쏟고 나면 찾아오는 머리아파병.
언변 좋은 동료를 보거나, 브런치에서 훌륭한 글을 만나면 생기는 배아파병.
회식에서 과식하고 운동이 며칠 끊기면 어김없이 도지는 근손실 걱정병.
(모래사장에서 사금 모으듯 애지중지한 근육이라, 놓치고 싶지 않다.)
최근엔 눈물나 병이 생겼다.
사소한 파동에도 눈물이 차오른다.
오랫동안 닫아둔 감정의 문이 열리자, 눈물은 마치 “나 아직 잘 작동 중이야.”라는 신호처럼 흘러나온다.
그리고 요즘 중증으로 앓는 건 '한 곡 반복병'이다.
덕질의 기본 버전이자, 내 감성을 유지하는 보조 장치다.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할 때, 나는 한 곡을 몇 시간이고 되풀이해 듣는다.
그 패턴이 내 뇌의 리듬을 잡아주고, 집중하게 해 준다.
여름이면 내 루틴은 쉽게 흐트러진다.
새벽 명상이나 감사일기도 손에 잘 안 잡히고, 그저 늘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올해 여름엔 눈뜨자마자 활기찬 노래를 이어폰에 꽂고 러닝을 시작했다.
땀방울과 리듬이 어우러진 아침, 반복되는 멜로디가 여름의 게으름을 조금은 밀어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요를 수십 번 부르고, 같은 장면을 끝없이 다시 보며 안심과 즐거움을 동시에 얻는 것처럼.
어른이 된 뒤에도 다르지 않다. 실연했을 땐 한 곡만 줄곧 듣고, 시험 기간엔 같은 노래를 무한 재생하며 버틴다. 많은 순간, 우리에겐 자기만의 ‘반복 플레이리스트’가 필요하다.
물론 주변인에겐 피해가 갈 수 있다.
이어폰은 필수이고, 가족들은 가끔 예고 없이 같은 병에 노출되기도 한다.
한 곡 반복은 심리학적으로도 집중력과 정서적 안정을 돕는다.
실제로 ADHD 치료과정이나 불안 완화에도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겐 이론보다 더 단순하다.
되풀이되는 노래 속에서 나는 흔들리는 감정을 붙잡고,
다음 순간을 살아낼 힘을 얻는다.
슬플 땐 발라드를 반복해 마음을 달래고,
지칠 땐 웅장한 리듬으로 내 심장을 두드린다.
좋아하는 영화나 책은 여러 번 보지 않으면서도,
노래만큼은 진정제이자 각성제처럼 내 곁에 있다.
여름의 뜨거운 리듬처럼 반복되는 음악은,
흔들리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내 작은 병들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오래,
이 친근한 병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작은 병들을 앓는다는 건,
사실 내 안의 균형을 지켜 온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웃음이 되었고,
때로는 삶을 지탱하는 장치가 되었다.
언젠가 그 안에 남은 오래된 흔적과도 마주해야겠지.
그 순간조차도 결국은,
나를 지켜온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작은 병이 있다면,
언젠가 그것이 당신을 버티게 한 이야기가 되길.
예상외로
곡명을 궁금해하셔서..
저의 이번 여름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합니다.
요즘에는 다른 곡을 듣고 있습니다.
곡을 추천해 주시면 더 양질의 글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